내년에 원하는 학교 사용… 2018년 검정과 혼용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내년에 국정 역사 교과서를 시행하려던 방침을 1년 유예하고 2018년부터 검정 교과서와 혼용하겠다고 27일 밝혔다. 2017년에는 국정 교과서를 희망하는 모든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주교재로 사용하게 하고, 다른 학교는 기존 검정 교과서를 다시 쓰게 할 방침이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유례가 없던 일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역사 교과서 전면 국정화 방침은 철회됐다. 2018년에 국정 교과서가 사용될지는 차기 정부가 결정하게 됐다. 야당과 친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성향 교육감들은 여전히 국정 교과서 폐기를 주장했다.
○ 유례없는 국·검정 혼용
교육부가 2018년부터 적용키로 한 국·검정 혼용 체제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같은 과목에 다른 교과서 체제를 운영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대통령령(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내년에 대부분 학생들이 배우는 검정 교과서(2009 개정 교육과정)와 교육과정이 다른 국정 교과서(2015 개정 교육과정)를 연구학교에서 쓰게 하는 것도 최초다. 지금까지 연구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아닌 교재를 써보거나 토론 등 다른 수업 방법을 실험했다. 국정 교과서 연구학교는 1년에 1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 근무 교사에게는 가산점이 주어진다.
교육부는 원래 국·검정 혼용 체제에 부정적이었다. 교학사 사태(2013년 보수 학자들이 쓴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학교가 1곳에 그쳤던 일)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였다. 이에 대해 금용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장은 27일 “(내년) 1년 동안 최대한 좋은 교과서를 개발해 많은 학교가 선택하게 하겠다”고 했다.
연구학교 고1 학생들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를 준비하기 위해 검정 교과서도 공부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 교과서는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썼지만 검정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하는 등 서술이 다른 게 다수이기 때문이다.
연구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다수 학생은 올해 사용했던 검정 교과서를 그대로 배운다. 교육부는 이르면 28일 출판사들에 기존 검정 교과서를 다시 인쇄해 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쓰일 검정 교과서가 2015 교육과정에 맞게 개발될 시간이 부족한 문제도 대통령령을 개정해 해결하기로 했다. 현재 1년 6개월로 돼 있는 개발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편찬 기준은 국정 교과서에 적용된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6·25전쟁을 남침이라고 하고, 북한의 여러 군사도발을 서술하지 않으면 승인받지 못한다.
○ 야당 폐기 예고…학생들 혼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국회에 계류돼 있는 ‘국정 역사 교과서 금지법’(역사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기로 했다. 교육부는 법안이 통과돼도 연구학교 운영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2018년에 국정 교과서를 쓰는 건 불가능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일부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 교과서를 비롯해 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들은 옳았고 성과도 있었는데 (‘최순실 게이트’ 이후) 비판받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국민이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런(검정 교과서들의 편향성)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동민 민주당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역사왜곡 시도는 이미 대통령 탄핵과 함께 심판받았다”며 “국정 역사 교과서는 유예가 아닌 폐기가 답”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교육부의) 이번 결정은 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주호영 개혁보수신당(가칭) 원내대표도 “균형 잡힌 교과서가 필요한 상황에서 국·검정을 혼용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를 반대했던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국정 교과서 오류에 대한 다수 학자들의 지적에 대한 해결 없이 정부 힘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교수는 “민족주의 사관으로 집필하지 않으면 매도되는 분위기 속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에 의한 국가 생존은 어렵다”며 “기존(교과서)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최예나 yena@donga.com / 장택동·우경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