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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사죄 회피하는 아베… ‘美日동맹’ 미래에 초점

입력 | 2016-12-28 03:00:00

하와이 공식 방문일정 돌입




 26일 오전 10시 반(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에 있는 국립태평양기념묘지.

 태평양전쟁으로 희생된 미군 1만3000여 명을 포함해 모두 5만3000명의 전사자가 잠들어 있는 묘역을 찾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빗속에서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화환을 바쳤다. 이어 15초 동안 눈을 감고 묵념했다. 묘역에는 조총 3발이 발사되고 진혼나팔이 울렸다. 미 군악대는 양국 국가를 연주했다.

 아베 총리의 역사적인 진주만 방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한 데 대한 답례다. 일본의 주일미군 분담금 증액을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하기 전 오바마-아베 체제에서 신(新)밀월 관계에 진입한 양국의 협력 관계를 확인하고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과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 가미카제 조종사 기념비도 찾아

 묵념을 마친 아베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등 일행은 1km가량 떨어진 마키키 일본인 묘지를 찾았다. 진주만 공습 때 전사한 일본군 위령비가 있는 곳이다.

 아베 총리 일행은 이어 호놀룰루 해병대 기지 안에 있는 이이다 후사타(飯田房太) 중좌 기념비로 향했다. 해군 조종사로 진주만 공격에 참가했던 그는 대공포 공격으로 기체가 손상되자 격납고로 돌진하는 자살 공격으로 생을 마쳤다. 일본은 그의 계급을 대위에서 중좌로 2계급 올리는 등 영웅으로 받들었다. 이이다는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 출신이다. 미군은 ‘최초의 가미카제 조종사’로 불리는 그의 용기를 인정해 기지에 매장했고 이후 기념비를 만들었다.

 아베 총리는 2001년 미군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한 고교 실습선 ‘에히메마루’ 희생자 위령비도 찾았다. 당시 고교생 등 9명이 숨지면서 일본 내에선 반미 여론이 들끓었다. 아베 총리의 이런 일정은 미국 측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아니라 쌍방 희생자에 대한 위령을 위해 진주만을 찾았다는 목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지지통신은 “미일 희생자를 함께 위령하면서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부전(不戰)의 맹세를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 “사죄하러 온 것 아니다”

 아베 총리는 ‘가해국’으로 ‘피해국’에 사죄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이날 위령 일정을 마친 뒤에는 현지 일본계 주민들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위령과 화해의 힘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에 보이고 싶다. 앞으로도 미일은 희망의 동맹으로서 지역과 세계의 다양한 문제에 함께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진주만 공습 때 침몰한 군함 위에 세워진 애리조나 기념관을 찾은 뒤 10분가량 연설을 할 때도 ‘사죄’나 ‘반성’은 언급하지 않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만 나타낼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전후 평화국가로서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돌이킨 뒤 ‘부전의 맹세’를 유지한다는 의향을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4월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통절한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진주만 공습에 대해서도 ‘깊은 회오’를 언급했다. 미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25일 아베 총리에게 “한국, 중국 그리고 다른 아시아태평양 국가 등에 위령을 갈 예정은 있느냐”는 공개질의서를 발표했다.

○ 일본에서도 찬반양론

 일본 내에선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아베 총리의 방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사죄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의견이 엇갈린다. 진보 성향의 도쿄신문은 이날 진주만 공습을 당했던 미국 퇴역 군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겁하고 비열한 공격이었다. 아베 총리가 사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반면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진주만 공격의 주역이던 사령관의 자녀를 인터뷰해 “미일 정상이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좋겠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 발표 직후에도 사설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재개’를 주장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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