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경주 손곡동 유적 발굴한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
23일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에서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이 가마터 발굴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64기의 숯가마와 토기가마가 무더기로 나왔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당초 경마장 용지였던 이곳은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가마터(요지·窯址)가 발견돼 2001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이로써 1992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은 취소됐고 유적은 보존됐다.
○ 미묘한 ‘흙색 변화’ 놓치지 않아
1997년 8월 초 손곡동 발굴 현장. 경주 토박이로 현장 책임자였던 이상준이 꽃삽과 대칼을 잡았다. 지표로부터 30cm 아래서 노랗게 변색된 흙이 동그란 형태로 발견된 것. 그는 순간 굴뚝임을 직감했다. 통상 가마 내부 벽체는 불에 닿은 정도에 따라 회흑색→노란색→빨간색 순으로 색깔이 바뀐다. 발화가 일어나는 가마입구(화구·火口)는 회흑색이 나타나는 반면에 연기가 나가는 연도(煙道)나 굴뚝은 불에 직접 닿지 않아 노랗거나 붉게 변색되기 마련이다.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에서 발견된 ‘숯가마’(위 사진). 나무 장작을 넣는 측구가 길게 늘어서 있어 피리를 닮은 구조다. 근처 토기 폐기장에서는 동물 혹은 춤추는 사람 모양의 토우(아래 사진)들이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이 가마(47호 토기가마)는 손곡동에서 발견된 47기의 토기가마 중 유일하게 땅 밑에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반(半)지하식 가마들이다. 이상준은 “47호는 이례적으로 가마 지붕이 붕괴되지 않은 채 발굴돼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최고의 유구로 꼽았다.
이 가마가 제공한 정보는 다양했다. 우선 가마 내부 온도가 높아도 바닥이 굳지 않고 무른 이유를 알게 됐다. 가마에 들어간 토기들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뿌린 모래가 화염이 바닥에 닿는 걸 차단한 것. 또 토기들이 가마 안에서 서로 엉겨 붙는 걸 방지하기 위해 토기 받침을 넣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 가마 변천사 종합전시장
경주 손곡동 유적은 숯가마(탄요·炭窯)를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발굴 당시 전국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숯가마는 울산 검단리와 경주 천군동 등에서 발견된 4기뿐이었다. 이들은 토기가마와 달리 평평한 데다 내부에서 토기가 발견되지 않아 숯가마로 추정됐을 뿐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손곡동 숯가마 안에서 숯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신라시대 손곡동에서 생산된 숯이 인근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에 공급됐을 걸로 본다. 손곡동에서 발견된 숯은 백탄(白炭)으로, 흑탄(黑炭)에 비해 화력이 떨어지지만 연소 시간이 길어 제철작업에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손곡동 토기가마는 5∼7세기에 운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 200년에 걸친 시대별 토기가마 양식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일본 나가노 현에서 손곡동의 7세기 중반 토기가마와 유사한 게 발견됐다. 이상준은 “신라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토기 제작 기술을 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22> 광주 월계동 ‘장고분’ 발굴 임영진 전남대 교수
<21> 세종시 나성동 유적 발굴한 이홍종 고려대 교수
<20> 고령 지산동 고분 발굴한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