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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진주만의 아베와 오바마… 외교에는 현실과 국익만 있다

입력 | 2016-12-29 00:00:00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한 애리조나 전함에 건립된 애리조나 기념관을 찾았다. 일본 총리로서 기념관 방문은 처음이다. 그제는 5만3000여 명의 전사자가 묻힌 국립태평양기념묘지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어제 “미일이 전후 화해를 하고 서로를 도왔듯 진주만이 세계인들에게 화해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인들에게 진주만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상흔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의 상처는 우애로 바뀔 수 있고 과거 가장 치열했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고 국가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아베 총리의 방문은 5월 오바마 대통령의 원폭 피폭지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답례다. 일본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재확인하고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노리는 현실주의 외교를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맞물려 중국의 거침없는 해양 진출, 러시아의 세력 확대 등 동북아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집권 5년째인 아베 총리는 내년 정책 우선순위를 경제에서 외교로 옮겨 가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해 10여 개국 정상을 불러들였고 내년 1월 재(再)방미와 러시아 방문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만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미일 신(新)밀월은 국제정치에서 적과 친구를 가르는 기준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을 생각하면 미일과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해야 할 판에 주요 대선주자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한다. 합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국가 간에 맺은 외교 안보 약속을 헌신짝 취급하면 국격과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미-일-중-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신냉전’의 각축장인 동북아에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위안부 합의가 비록 최상은 아니더라도 단순한 과거사 청산을 넘어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 정치인들도 합의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언행은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