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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주머니에 쏘옥… 문고본 문학의 부활

입력 | 2016-12-29 03:00:00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장정일 ‘삼중당 문고’에서).

 삼중당 문고, 을유 문고, 범우 문고…. 1960, 70년대 대중 독자들 사이에서 불었던 문학 바람엔 이런 문고본의 역할도 컸다. 문고본은 가로 110mm, 세로 145mm의 판형으로 제작된 책을 가리킨다. 독서 시장의 폭발적 증대와 더불어 활발하게 나오다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퍼지고 단행본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세가 꺾였다.

 한동안 주춤했던 문고본이 부활할 조짐이다. 민음사는 최근 ‘쏜살 문고’ 7권을 펴냈다. 토마스 만의 단편 ‘키 작은 프리데만 씨’,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산책’,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 등이다. 민음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계문학전집’을 바탕으로 삼아 선보인 책들이다. 기획을 맡았던 유상훈 씨는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5000∼7000원대)으로 보급이 용이한 데다 휴대하기 쉬운 작은 판형이 물성(物性)에 열광하는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산책출판사도 내년 초 ‘마음산 문고’를 선보인다. 요네하라 마리의 저서 5권이 첫 시리즈로 나온다. 그의 책들은 이미 마음산책에서 큰 판형으로 출간했지만 문고본으로 새롭게 제작하게 됐다. 정은숙 대표는 “서양의 페이퍼백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초판을 하드커버로 출간했다가 독자들의 호응이 좋으면 종이 표지의 저렴한 페이퍼백으로 내는 외국 도서의 관행을 가리킨다. 정 대표와 유 씨는 “신간이 아니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할 수는 없지만 독자들 사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 꼽았다.

 책 폭발 시대에 출현했던 1970년대 문고본과 달리 최근 문고본은 책의 축소 시대에 발맞춘 산물이다. 많은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어려운 시대에 이익은 적지만 그만큼 손해도 적은 문고본의 제작은 시의적절하다. 다양한 방편으로 독자들을 만나기 위한 ‘책의 노력’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21세기 문고본의 시도는 의미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