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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따기’ 예매를 부탁해, 번개손

입력 | 2016-12-30 03:00:00

순식간 매진 아이돌 공연 티켓, PC방서 빠른 손놀림으로 예매
성공보수 받고 넘겨주는 알바 성행… SNS-팬카페 등에 의뢰 글 줄이어
“암표보다 합리적” “편법 안돼” 갈려




 지난달 23일 서울 동작구의 한 PC방은 이른 아침부터 20대 여성 손님 수십 명으로 가득 차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번개손’으로 인정받은 대리예매 알바(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이날 정오에 예정된 영국의 인기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내한공연을 예매하기 위해 인터넷 속도가 빠르다는 명당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이돌 공연 티켓 예매 경력만 9년째인 이예인 씨(25·여)도 SNS에서 예매 의뢰를 받고 이날 오전 9시경부터 PC방을 찾았다. 이날 정오 티켓 판매가 시작된 지 1분여 만에 이 씨는 11만 원대 S석 티켓 한 장을 건졌다. 순간 동시 접속자만 최대 55만 명에 달해 2분 만에 2만2000석이 매진된 예매전쟁에서 거둔 승리였다. 이 씨는 의뢰인에게 티켓을 넘겨주고 성공 보수로 5만 원과 피자 기프티콘(모바일 상품권)을 받았다.

 아이돌 팬덤 사이에 성행했던 대리예매 알바가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하늘의 별 따기’인 아이돌 공연 티켓 예매에서 단련된 번개손 실력을 해외 가수 공연은 물론이고 뮤지컬 공연, 유명 배우 팬미팅, 연휴 기차 승차권 예매에서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티켓 예매 시기가 다가오면 SNS, 물품 거래 커뮤니티, 팬카페 등에는 대리예매를 의뢰하거나 의뢰받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알바가 화려한 예매 성공 경력을 인증받아 거래가 성사되면 1만 원을 넘지 않는 선금을 받고 작업에 착수한다. 예매가 끝난 뒤 의뢰인이 사례금을 송금하면 알바가 티켓 배송지를 의뢰인이 원하는 곳으로 고쳐 주는 방식으로 거래를 마무리한다. 사례금은 보통 5만 원 내외로 좌석이 무대와 가까울수록 금액이 올라간다.

 대부분 아이돌 팬 출신인 대리예매 알바들의 비결은 ‘피케팅(피가 튀는 티케팅)’에서 겪은 시행착오. 이 씨는 “예매 사이트마다 수십 번씩 예매해 본 경험 덕분에 예매 절차가 손에 익어 클릭이 빠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티켓 예매 때마다 예매 사이트 접속이 빠른 PC방을 수소문해 자리를 잡는 것은 기본이다. 예매 사이트에서 예매 단계를 수 페이지 뛰어넘을 수 있는 ‘직링(직접 링크)’이 알바 사이에 공유되기도 한다. 동시 접속자가 많아 예매 사이트 접속이 어려워도 직링을 이용하면 접속이 쉽다.

  ‘이선좌’(이미 선택된 좌석·예매할 때 실패하면 뜨는 ‘이미 선택된 자리입니다’에서 따온 말)에 고배를 마셨던 사람들은 대리예매 알바에 대개 긍정적이었다. 유명 가수 공연 티켓 대리예매를 의뢰한 적이 있는 심지은 씨(22·여)는 “직접 예매하거나 암표를 사는 것보다 합리적이고 가수 팬들도 암표 거래를 줄일 수 있어서 바람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반면 한 인디밴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인디밴드 공연까지 대리예매가 등장한 것을 보고 놀랐다. 현행법 위반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티켓 구매 방식은 아니므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암표와 대리예매 관행으로 공연 티켓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자 일부 아이돌 공연에서 입장 시 얼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