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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동아방송-HLKZ 개국 주도, 최창봉 한국방송인회 이사장

입력 | 2016-12-30 03:00:00

“그의 삶이 곧 한국 방송의 삶”




 “그는 한국 방송의 설계자이며 개국 전문가다. 한국 방송은 그가 깔아놓은 길을 따라 걸어왔다.”(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방송계의 산증인이자 채널A의 전신인 동아방송(DBS)의 초석을 놨던 최창봉 한국방송인회 이사장(사진)이 2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5년 평북 의주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홀로 월남해 고려대 영문학과에 다니다 6·25전쟁 때 군에 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 국방부 군 방송실장을 맡아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최창봉의 삶이 한국 방송의 삶”(장한성 한국방송인회장)이란 말처럼 고인은 대한민국 방송사(史)를 열고 펼치고 닦은 인물이었다. 1956년 국내 최초의 TV 방송사인 HLKZ의 개국을 주도했으며, 역시 최초의 TV 드라마인 ‘사형수’ 연출을 맡은 한국 TV PD 1호였다. 이후 MBC 라디오 개국 기초를 닦은 뒤 개국 한 달을 앞두고 1961년 군사정권에 징발돼 국영TV KBS 개국 준비 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40년 가까운 고인의 방송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1963년 동아방송 개국이었다. 고인의 자서전 ‘방송과 나’(2010년)에서 “동아방송은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문을 닫을 때까지 17년 7개월이란 제한된 기간에 우리 방송 문화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방송”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의 방송 인생에서 ‘앵무새 사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가 신설한 프로그램 ‘앵무새’는 국내 최초의 라디오 칼럼. 당시 군사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담당 실무자들과 옥고를 치렀다. 1967∼1975년 동아방송 PD로 일했던 김학천 전 EBS 사장은 “고인 덕분에 광고나 청취율, 옆(군사정권)의 간섭에 휘둘리지 않고 올곧은 방송을 만드는 대단한 축복을 누렸다”고 돌아봤다.

  ‘국민배우’ 최불암 동아방송예술대 석좌교수는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술자리가 그립다. 선생님의 남자다운 모습을 그리워하고, 선생님의 결단력과 고집을 사랑한다”고 추모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라디오와 TV, 국영과 민영, 공영방송을 두루 섭렵한 거의 유일한 방송인이다. 방송사에 끼친 그의 업적과 족적은 전설로 남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7년 금관문화훈장을 비롯해 충무무공훈장(1953년) 보관문화훈장(1979년)을 받았다. 호암문화상(1993년) 월남장(2003년) 방송위원회대상 특별상(2007년) 대한언론인회 언론공로상(2008년)도 수상했다. 유족은 영이 영경 영진 씨 등 3녀.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발인은 31일 오전 7시. 02-2072-2011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