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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과로자살

입력 | 2016-12-30 03:00:00


 일본의 명문 도쿄대를 졸업한 24세의 재원 다카하시 마쓰리 씨. 그에게는 2015년이 생애 최고이자 최악의 해였다. 그해 4월 또래들이 선망하는 세계적인 광고회사 덴쓰에 입사했을 때는 희망과 열정으로 부풀었다. 한데 입사 이후 하루하루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결국 ‘이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감정이 다 사라졌다’ ‘매일 다음 날이 오는 게 무서워서 잘 수 없다’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모를 때부터 인생이다’ 등의 메시지를 사회관계망에 남기곤 크리스마스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8개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앞길 창창한 신입사원의 죽음은 과로자살이다. 그는 한 달에 100시간 넘는 초과근무를 했다. 어떤 때는 사무실을 잠시 벗어난 시간(17분)을 빼고 53시간 연속 근무를 하기도 했다. 불법 잔업이었으나 회사는 잔업의 축소 신고를 강요했다.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도쿄 노동국은 27일 덴쓰 법인과 다카하시 씨의 상사였던 간부를 노동기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28일 이시이 다다시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다카하시 씨의 자살 직후 덴쓰 본사 여직원은 한 인터뷰에서 “종업원 7000명 중 2000명은 다카하시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 회사까지 포함해 실제로 직원 수가 4만7000여 명에 이르는 덴쓰는 불법적 장시간 근로와 살인적 업무 강도로 악명 높다. 앞서 1991년 이 회사에서 24세 직원이 과로자살을 했다.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2000년 최고재판소가 ‘회사는 직원의 심신건강에 주의 의무를 진다’고 판결했으나 똑같은 비극이 반복됐다.

 ▷28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주 49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 취업자 비율이 한국 32.4%로 가장 높다. 일본은 21.3%였다. 장시간 노동을 회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여기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이다. 노동시간보다 성과로 평가받는 기업문화가 뿌리내릴 때 꽃다운 청춘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 과로자살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