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새해특집/외환위기 20년, 기회의 문 넓히자/2017 연중기획] <1> 소외된 다수 낳은 기울어진 운동장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기회가 줄고 불공정한 경쟁이 만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 취업, 소득, 사회적 성취, 자녀 양육, 노후 등 생애 전(全) 분야에 걸쳐 기회의 문이 좁아지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는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기회 불평등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할 대안을 모색해 보는 연중 시리즈를 시작한다. 올 상반기 개최할 ‘2017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선 국내외 전문가들을 초청해 외환위기 이후 20년간의 구조 개혁 성과를 평가하고 기회의 문을 넓혀 경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도 모색할 계획이다. 》
동아일보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취업 및 출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36.8%)이나 ‘경제적 배경’(28.5%)을 꼽은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개인의 능력’은 33.8%에 그쳤다. 자신의 향후 계층 이동 가능성에는 ‘올라설 것이다’(30.2%)보다 ‘제자리일 것’(48.6%)이라거나 ‘떨어질 것’(21.2%)이라는 응답자가 배 이상으로 많았다.
계층 이동에 대한 절망감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가 불공평하다는 인식으로 굳어졌다. 동그라미재단이 지난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기회 불평등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육 및 취업의 기회는 물론이고 △인맥 형성 기회 △문화활동 기회 △정보 획득 기회 등에서 모두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은 계층 이동을 신분 상승이 아니라 기회 불평등으로 계층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지니계수가 낮아진 걸 두고 소득 불평등이 완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기초연금, 근로장려금(EITC), 청년수당 등 현금을 쥐여주는 정책이 반영된 결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더 많다. 저소득층에게 ‘기회의 문’은 열어 주지 않고 복지정책만 확대하면 이들이 중산층 이상으로 올라서는 계층 이동성은 약해지고 한국 사회의 구조 왜곡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미완의 개혁으로 벌어진 기회 격차
기회 불평등이 두드러진 분야는 교육이다. 학생부 종합전형 등 수시 모집 비중이 커지며 대학 입학은 갈수록 정보력과 경제력을 쥔 상류층이 주도하는 게임판이 돼 가고 있다. 취업시장의 기회 불평등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상시화하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좋은 일자리가 적어졌다.
20년간 기회의 문이 좁아진 원인은 ‘미완의 개혁’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 유연화 등의 노동개혁이 진행됐다. 하지만 은행, 대기업 등은 힘센 노동조합을 등에 업은 정규직이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면서 개혁 무풍지대가 됐다. 중산층으로 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 공무원, 전문직 정도로 국한됐고 이 문을 뚫지 못한 소외된 다수는 낙오자로 전락하게 됐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 등으로 왜곡된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의 문이 열리고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동아일보-KDI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