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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석의 시간여행]세 번의 정유년 돌고 도는 역사

입력 | 2017-01-02 03:00:00


아관파천으로 고종이 피신해 있던 서울 정동의 옛 러시아공사관.

  ‘새해에는 새 마음을 먹어, 벼슬만 제일 사업으로 여기지들 말고, 자기 직분과 도리에 전념하며, 나라 법을 제일 중한 명령으로 알고….’

 정유년 새해맞이 신문의 몇 구절을 모아 본 말이다. 120년 전 독립신문 1면 논설인데, 공직자와 국민 일반을 향한 절절한 당부가 담겨 있다. ‘나라에 소란함과 위태함이 없기를 하늘에 비노니’로 시작하는 이 1897년 신년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공직자는 정부 안에서 일을 의논할 때 귀엣말과 수군거림이 없이 정정당당하게 일을 할 것. 법률을 벗어난 일은 하지 말 것. 만일 윗사람이라도 법과 규칙 밖의 일을 하라고 억지로 시킨다면 이는 곧 죄를 지으라는 것이니, 어떤 경우도 따르지 말 것. 그래야 직분을 다하는 것이 된다.’(독립신문 1897년 1월 5일자)

 때는 바야흐로 국왕이 궁을 떠나 러시아의 공사관으로 피란한 시절. 10개월 뒤 대한제국 수립으로 가는 격랑의 시기였다. 그 정유년에 당면한 국가의 핵심 과제를 신년사는 그렇게 지목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호위를 받는 왕은 조만간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었고, 러시아 군사교관단이 조선군을 조련 중이었다. 독립신문은 며칠 전 송년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도 외국 군사제도를 배워 외국과 같이 군이 규모 있고 용맹하게 되어 위로 임금을 보호하고 아래로 인민을 안정시켜 태평하게 되기를 바란다.’(1896년 12월 31일자)

 그러면서 서로 꺼리고 미워하며(嫌疑) 편을 갈라 당을 만드는(偏黨) 구태를 벗어던지기를 소망했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러 다시 정유년. 1957년의 신문 신년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해방이 되고 열두 번째 맞이하는 새해이다. 지나간 11년을 돌이켜볼 때 무량한 감개와 한없는 비탄을 금할 수 없다. 해방만 되면 모든 일은 다 잘될 줄로만 알았던 것이 정작…해방 후 백해무익한 반목대립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심해졌다.’(동아일보 1957년 1월 1일자)

  ‘미국이 원조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뒤진 나라’라는 불명예 속에 6·25전쟁 이전 못지않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그 혼란의 근본은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서로 협조하는 데 서투른 데 있다고 신년사는 진단하면서 이렇게 썼다.

  ‘협조에의 노력이란, 나의 권리와 사익을 존중하는 것처럼 남의 권리와 사익도 존중하는 노력이요, 나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노력이요, 충분히 토론하고 신속히 타협하는 노력이다. 한 나라 국민의 협조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모든 도덕력의 수준과 비례한다.’

 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의 협조 수준은 하락 일로를 달려왔다는 것이다.

  ‘나의 권리와 사익만을 존중하고 남의 것은 희생시키려 하고, 모든 공은 나에게 있고 모든 죄는 남에게 전가하려 하고, 자기 교만에 빠져 충분히 토론하기 전에 배척부터 앞선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라면 간단하고 쉬울 일도 우리나라에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는 것. 이 같은 협조 결핍의 근원은 도덕의 추락 때문이라고 신년사는 진단한다. 소리(小利)를 탐하여 협조를 거부하고 동족상잔을 일삼아온 그 자멸 노선을 되풀이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60년이 흘러 다시 정유년. 대한민국의 6공화국이 어언 30주년이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