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2016년 마지막 날, 잊고 살던 산을 찾아가던 중 전철 안에서 들려온 안내방송이다.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와 같은 국적 불명의 안내 방송에 거북해하던 터라 귀가 번쩍 뜨였다.
‘안전문.’ 승강장과 전동차가 다니는 선로 사이를 차단하는 문이다. 평상시에는 닫혀 있어 승객이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를 막아준다. 이 낱말, 국립국어원이 2004년 스크린도어를 순화한 것이다. 뜻이 분명하고 친근감을 줘서인지 요즘 들어 입길에 부쩍 오르내린다. 허나 아직까지 표제어에 오르진 못했다.
사갈이라고 하면 흔히 뱀과 전갈을 아울러 이르는 사갈(蛇蝎)을 떠올릴 것이다. 남을 해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 말이다. ‘사갈시하다’도 그렇다. 어떤 대상을 몹시 싫어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순우리말 사갈은 뜻이 전혀 다르다. ‘산을 오를 때나 눈길을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굽에 못을 박은 나막신’ 또는 ‘눈이나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굵은 철사 같은 것으로 뾰족하게 만들어 끝이 땅에 박히도록 만든 것’이다.
사갈의 뜻풀이를 보고 설피(雪皮)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설피는 산간 지대에서 눈에 빠지지 않도록 신 바닥에 대는 넓적한 덧신을 말한다. 칡이나 새끼 따위로 얽어서 만든다. 또 있다. 얼음이나 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 바닥에 박는 뾰족한 징은 ‘재리’다.
당장 아이젠 대신 사갈을 쓰자고 주장하는 건 물론 아니다. 말이라는 건 언중들에게 한번 잊히면 되살리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언중의 말 씀씀이에 힘입어 ‘인터체인지’와 ‘IC’가 ‘나들목’으로, ‘휴게소’가 ‘쉼터’로 바뀐 것이 이를 증명한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