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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 Opinion]아름다운 동행, ‘경희 모델’

입력 | 2017-01-03 13:59:00

육성철의 Human Space(4)




휴게실에서 쉬는 청소노동자. 왼쪽부터 손희규 문옥련 이옥경 씨



새벽 6시, 체감온도 영하 10도. 지난 12월 30일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청소노동자들이 겨울방학 대청소를 시작했다. 문리대 건물 본관에 모인 노동자 6명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달려왔다. “아침은 드셨냐?”는 질문에 한 사람만 고개를 끄덕이고 다섯 사람은 웃음으로 답했다. 캄캄한 교정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서 노동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먼저 ‘네오프로에스피 123’이라 적힌 고농축 왁스 박리제를 물에 풀어 200배로 희석했다. 상표 이름에서 풍기는 자극성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설명서에 피부 자극을 경고하는 문구와 함께 ‘사용 시 보호 장갑과 보호의를 착용하라’는 안내사항이 있다. ‘장기사용 금지’라는 경고성 멘트도 눈에 보였다. 그러나 마스크를 한 사람은 단 1명, 나머지는 고무장갑과 목장갑만 끼고 있었다.

쓸고 닦고 미는 모습은 마치 염전을 연상케 한다.



물에 탄 세제를 바닥에 뿌리자 소독약 냄새가 확 풍겼다. “사람으로 치면 목욕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는 중”이라고 이옥경(57) 씨가 말했다. 이씨는 “그냥 세제만 뿌리면 왁스 표면의 흠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며 맨손으로 돌가루를 뿌렸다. 돌가루와 세제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해변의 포말처럼 하얗게 일어났다. 바닥의 찌든 때가 부풀어 오르는 동안 노동자들은 휴게실에 모여 믹스 커피로 속을 달랬다.

이옥경 씨는 휴게실에 앉아 2011년 가을을 떠올렸다. 당시 용역회사는 건물 환경미화가 주요 업무인 노동자들에게 어깨띠를 두르게 한 뒤 경희대 정문 청소까지 시켰다. 노동자가 퇴사해도 신규 직원을 뽑지 않았고, 노동자의 가족이 중환자실에 입원해도 노동자가 병원에 가기 힘든 시절이었다. 당사자들의 분노는 노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고, 대학이 100% 출자하고 노동자들이 수익금 관리에 직접 참여하는 자회사 설립(1월 예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린 학교도 고맙지만 학생들의 마음 씀씀이를 잊지 못합니다. 학교가 등록금을 인상하자 학생들이 ‘인상분 중 일부는 환경미화원 처우개선에 써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그 돈으로 여기 휴게실에 옷장과 에어컨을 들여놓고 도배까지 했습니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8시간 이상을 일하면서도 7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았다. 시간당 임금이 4320원이었으며 식대도 없었다. 그러나 노조가 설립된 뒤 시간당 임금이 5100원으로 인상됐고 식대도 10만 원이 책정됐다. 무엇보다 한 직원이 퇴사하면 곧바로 신규 직원을 채용해 기존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었다. 숨이 콱 막힐 정도로 독성이 강했던 세제를 전격 폐기한 것도 그때였다.
 
손등에 붉은 반점

청소 세제는 독성이 있어서 닿기만 해도 상처를 입는다.



노동자들은 철저한 분업 체제로 일했다. 철솔이 달린 연마기가 맨 앞에서 구석구석 왁스 바닥을 훔치고 지나갔다. 연마기는 강력한 솔질로 때를 벗겨내는 기계인데 워낙 무겁다 보니 노동자의 귀밑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철솔의 반동이 여느 청소기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경사로 앞에 이르자 기계가 튀어  올라 유리문을 때렸다.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연마기를 잡았고, 여자들은 고무래(‘丁’ 자 모양의 기구)와 쓰레받기로 물을 쓸어 담았다. 멀리서 보면 염전에서 밀고 쓸고 담는 모습이었다.

세제를 뿌린 지 30분 만에 바닥은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세제와 물이 흘러간 자리는 투명하고 미끄러웠다. 노동자들은 장화 밑에 철수세미를 칭칭 감고 조심조심 걸었다. 물에 젖은 전선을 맨손으로 옮기는가 하면 목장갑 속으로 희석한 세제가 계속 스며들었다. 통증을 호소한 안선근(66) 씨의 손등에 붉은 반점이 나타났다. 원액을 섞는 과정에서 몇 방울 튀었다고 했다. 그는 “옛날엔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안씨는 경희대와 자신의 오랜 인연도 떠올렸다. 55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경희대 학생들이 시골로 농활(농촌활동)을 왔는데, 그때 배운 경희대 교가를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다. 어떤 대학생이 처음 바둑을 가르쳐주었는데 그 후 꾸준히 실력을 키워 아마추어 1단이 되었다고 했다. 안씨는 연마기를 조정할 때도 바둑 기사처럼 한 수 한 수 생각하며 움직이는 듯했다.

오전 8시, 날이 밝았다. 환기를 위해 출입구를 열자 한기가 밀려왔다. 밖으로 흘러간 물은 땅에 닿기도 전에 얼어붙었다. 노동자들은 세제 냄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작업에 몰두했다. 문옥련 씨는 “청소를 마치고 난 뒤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로 투입된 손희규 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바닥을 문지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사실 파리 목숨이었어요”

노동자들은 새벽 6시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를 시작한 지 3시간 30분, 노동자들은 ‘중간 휴식’이라며 밥솥에서 막 쪄낸 호박고구마를 나누었다. 남자 3명, 여자 3명, 매일 아침 문리대의 3개 건물을 청소하는 6명이 한 자리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2017년 초 출범하게 될 자회사에 기대를 걸었다. 경희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2016년 12월 7일 합의한 문서에 따르면, 학교 대표, 노동자 대표, 학생 대표가 공동으로 ‘소셜 벤처’를 운영할 예정이다. 이옥경 씨가 밝힌 자회사 설립의 의미는 의미심장하다.

“청소 노동자들이 사실 파리 목숨이었어요. 용역회사 바뀌면 아무 이유 없이 억울하게 해고되었거든요. 그런데 경희대에서는 고용승계 보장하고, 학교가 사실상의 원청업체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거잖아요. 앞으로 전국의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경희대를 배우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경희 모델’로 지었어요.”

경희대학교는 2015년부터 희망제작소와 공동으로 대학 청소노동자의 고용문제 해법을 풀기 위한 ‘사다리 포럼’을 운영해 경희 모델의 초안을 마련했다. 최근 수년간 재벌기업 소유 대학들이 청소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외면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경희대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의 피로회복을 위해 복지기금을 조성하고 문화 프로그램까지 개설했다.

“관계가 바뀌니까 사람들도 달라지더라고요. 학생들이 청소원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우리도 학생들이 강의실 들어가기 전에 청소 마치려고 더 일찍 출근하게 되고….”

청소는 오전 11시가 넘어 끝났다. 아침도 거르고 4시간 가까이 쓸고 닦느라 지친 모습이었다. 남자들은 닭볶음탕, 여자들은 갈치조림을 시켜 이른 점심을 먹었다. 평소엔 휴게실에서 직접 밥을 해먹지만 대청소 기간에는 회사에서 특식비를 준다. 7년째 이 자리에서 청소하는 이옥경 씨는 “몸이 고된 건 얼마든지 견딜 만하다. 그러나 사람한테 치이는 건 수십 배 어렵다”며 노조 설립과정의 마음고생을 회고했다. 그에게는 3개월 만에 체중이 5kg이나 빠질 만큼 힘든 시절이었다.

2017년 경희 모델의 징조는 좋다. 최근 7명이 퇴직해 후임자 모집공고를 냈는데 무려 154명이 지원했단다. 임금이 높지 않고 노동 강도까지 센 대학 청소부 자리가 이례적으로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 것이다. 이씨는 “경희 모델이 성공해서 다른 대학으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