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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몰린 조선업 핵심인력 日로 넘어갔다

입력 | 2017-01-04 03:00:00

작년 연구인력 등 1000여명 실직… 계약직 재취업… 기술유출 우려
정부, 현황파악 못한채 속수무책




 경남 거제시 소재 삼성중공업 부장급으로 일하던 50대 엔지니어 A 씨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한 후 일본 조선 계열사로 재취업했다. 일본 조선소에서 맡은 업무는 프로젝트관리(PM)직. 각종 프로젝트 전반을 관장하는 조선소의 핵심 업무다. 정부 발주 물량이 꾸준히 이어진 일본 중소형 조선업체들은 요즘 현장 경험이 풍부한 한국 전문 인력을 2, 3년 계약직으로 많이 찾고 있다.

 지난해부터 고강도로 진행된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퇴직 위기에 처해 있다. 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핵심 기술 및 공정 노하우를 가진 수백 명의 퇴직자가 일본과 중동 등지의 해외 조선소에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취업을 통해서라도 대규모 실직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핵심 인재까지 유출되는 사태를 방치하면 국가 먹거리 밑천을 해외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구조조정 이후’ 중장기 핵심 인력 정책도 못 세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 업체에서 퇴직한 정규직원은 4500여 명. 조선업 전체로는 총 2만여 명이 실직한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보고 있다.

 국내에서 재취업 기회를 찾지 못한 퇴직자들은 해외 업체의 구애를 뿌리치기 힘들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일본으로 인력을 보내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선박 설계와 엔지니어링 등 핵심 기술 인력들이 우선 타깃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구조조정이 시작된 2015년 조선 3사 핵심 인력(연구개발, 설계, 생산관리) 1만943명 중 10%인 1091명이 퇴직했다. 2015년 전체 퇴직자(4592명)의 23%다. 이 추세대로라면 지난해 조선 3사 퇴직자 4500여 명 중 핵심 인력은 1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해외로 떠났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자리를 마련해놓고 희망퇴직을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 “구조조정 이후 대비, 중장기 인력정책 세워야” ▼
 

 해외 조선소들은 20년간 세계 시장을 제패한 ‘한국 조선업’의 노하우를 가진 핵심 인력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들을 붙잡을 여력이 없는 업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해외 재취업자들도 기술 유출에 대한 비판적 시각 때문에 이직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있다. 한 조선소 퇴직자는 “같이 회사를 나온 동료들도 해외에 재취업하면 바로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전혀 얘기를 안 한다”고 전했다.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은 고부가가치 선박 및 해양시스템 설계기술 등 7종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유출 및 침해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퇴직자들의 해외 취업까지는 막지 않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조선업 핵심 인력 퇴직자들에 대한 추적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조선 3사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퇴직자 신원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추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산업부가 현재까지 이직 상황을 파악한 핵심 인력 퇴직자는 100명 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핵심 인력 퇴직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올해도 합쳐서 3000명 정도를 내보낼 예정이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매출 목표를 10년 전 수준인 15조 원으로 낮춰 잡아 추가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핵심 인력 유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조선업 전문가들은 영국 등 과거 유럽의 조선 강국들이 일본 한국에 산업 주도권을 내준 뒤에도 설계나 엔지니어링 등 원천기술 인력은 지켜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정광효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인건비로는 중국과 경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젠 핵심 기술력으로 승부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선업 퇴직자 지원제도가 현장 기술자 위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훈 KAIST 기계공학과 초빙 교수는 “조선 경기가 살아났을 때를 대비한다면 핵심 인력들이 국내 연구개발(R&D)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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