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 없는 말폭탄 왜?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자진 탈당을 거부한 친박(친박근혜)계 핵심들을 향해 “일본 같으면 할복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인 위원장은 친박계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을 탈당한 개혁보수신당(가칭)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을 향해 전방위 ‘말폭탄’을 날렸다. 정치권 일각에선 인 위원장이 지난해 1월 혈혈단신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입성해 거침없는 발언으로 친문(친문재인)계를 제압한 김종인 전 대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친박 쌍두마차 정조준 인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친박계의 단일대오를 깨기 위해 핵심부를 직접 공략한 셈이다. 인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는데 어떻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느냐. 일본 같으면 할복했다”며 “국회의원 직은 유지하고 당만 나가 달라는데 그 책임도 못 진다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사람이 되고 나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몰아쳤다. 인 위원장은 서 의원이 스스로 탈당 시기를 정하겠다고 한 데 대해 “(서 의원이) 임금님이냐. 자기가 얘기하면 다 들어야 하느냐”며 “이런 태도로 당을 운영해 이 지경에 오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인 위원장은 또 “2선 후퇴한 분들이 왜 계파모임을 하느냐”며 “지난해 7월 6일 2선 후퇴를 한 분이 이번에 또 했다. 2선 후퇴를 한 번 더 해야 할 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친박계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최 의원은 지난해 7월 6일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해 12월 29일 다시 한 번 2선 후퇴를 약속했다.
인 위원장은 “악성종양(인적 청산 대상)이 누군지 나도 몰랐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자기들 스스로 째달라고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 친박 핵심 부글부글 인 위원장은 탈당을 선언한 이정현 전 대표를 두고 “제 머릿속에 (인적 청산 대상으로) 없던 분”이라며 “이렇게 큰 결단으로 모범을 보였다”고 극찬했다.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홍문종 의원이 자신에게 거취를 일임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인 위원장은 “(친박계 핵심들이) 죄 없는 사람(친박계 내 비주류)을 인질로 잡고 ‘나만 (탈당) 대상인 줄 아느냐’고 하는데, 이건 인질극”이라며 “핵만 제거하면 악성종양이 번지지 않는다”고 했다. 친박계 갈라치기로 친박계 핵심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 위원장은 “저는 처음부터 ‘(내가)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며 “(친박계 핵심들이) 어떻게 할지 두고 보자”고 했다. 이날 인 위원장을 만난 초선 의원 26명은 “당 지도부의 혁신을 적극 지지하고 뒷받침하기로 했다”고 밝혀 인 위원장의 우군(友軍)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에 서 의원은 “공당의 대표로서 금도를 벗어났다. 최소한의 품격을 지켜주길 바란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최 의원은 이날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인 위원장은 보수신당을 향해 “여기(새누리당)다가 똥을 잔뜩 싸놓고 도망갔다. 도망가지 않은 친박은 참 순진하다”며 “저 당엔 많은 분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서민의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그 사람들이 ‘서민 보수’라고 하면 국민이 믿겠느냐”고 비판했다. 또 반 전 총장을 두고도 “새누리당에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 당의 도덕적 기준에 맞는지 검증하겠다”고 했다. 추가 탈당을 막고 새누리당 재건 의지를 강하게 보인 셈이다.
인 위원장은 “우리 당의 협력 없이 누구도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느냐”며 “우리가 (대선 후보를) 골라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새누리당이 인적 청산을 시작으로 쇄신에 성공하면 자신이 정계개편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egija@donga.com·강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