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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바라기]연상호 감독 “한국은 분노 사회… 올해는 화 풀리는 세상 됐으면”

입력 | 2017-01-04 03:00:00

<1> 영화 ‘부산행’ 연상호 감독




지난해 끝자락, 사무실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 그는 “‘부산행’이 흥행한 덕분에 이전엔 꿈도 못 꾸던 제안이 많아졌지만 그럴수록 생각이 많아진다”면서 “2017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차기작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앞으로도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더 열심히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어느 때보다 기다렸던 새해다. 절망과 낙심과 상처를 넘어 이제 희망을 말하고 싶다. 소박한 개인적 희망부터 국가와 사회에 기대하는 희망까지…. 해를 보고 꽃을 피우는 해바라기처럼, 희망을 바라보면서 한 해를 맞는 문화계 ‘희망바라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2017년 새해엔 사람들의 ‘화가 풀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1156만 관객을 끌며 유일하게 ‘천만’ 타이틀을 얻은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39). 큰 성공 뒤 잠시 쉬어갈 법도 하지만 2018년 개봉 예정인 차기작 ‘염력’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12월 30일 “바빠서 이발할 시간도 없었다”던 그를 사무실에서 만났다.

 “꽤 오래전부터 느낀 건데 한국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가 나 있어요. 인터넷에서도 다들 분노에 차 있고 현실에서도 그렇고요. 제 영화에 담았듯 한국 사회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건 맞아요. 다만 제 살 깎아먹듯 나를 향해, 남을 향해 화만 내기보다 좀 더 냉정하게 나와 우리 사회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최근 돌을 갓 넘긴 딸을 키우면서 사회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는 그다.

 “아이가 무엇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책 한 권을 보더라도 주인공에게 공감해 눈물 흘리고, 영화 한 편에서도 내가 주인공인 듯 몰입하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좀비보다 무섭고, 그런 사람이 가득 찬 사회가 영화 속 열차보다 무서운 거 아닐까요.”

 그는 지난해 영화감독으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될 것 같을 정도”로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고 스스로 평했다. 영화가 성공하자 감독에겐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강의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안 하려고 했어요. 남의 인생 얘기 한두 시간 듣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뻔하잖아요. 독립영화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성공해서는 ‘너도 열심히 해라’ 하고 조언하는….”

  ‘상황이 어려워도 힘을 내라’ ‘열심히 해라’ 하는 뻔한 말이 빠지자 강연은 오히려 호응이 더 컸다. “전 무언가 도전하는 분들에게 ‘힘들면 얼마든지 절망하라’고 말해요. 다만 절대 고립되지는 말라고요. 절망하면 혼자만의 방에 갇히기 쉬워요. 그럴수록 단 한 명에게라도 내 삶을 열고 소통해야 해요. 혼자 있게 되면 고립에 가속도가 붙고, 다시 빠져나올 수가 없거든요.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 역시도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고 10여 년간 작은 공모전 하나 당선되지 못하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재능이 없다며 자책하던 시절, “넌 재능이 있어. 인생 망치더라도 결국 사람이 죽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니냐?”라던 한 친구의 말이 그에게 큰 힘이 됐다는 설명이다.

 연 감독은 올해 40대에 접어든다. 나이가 들고 아버지가 되니 나름의 큰 행복이 있지만 ‘청년’ 때의 열정적인 눈빛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올해는 20, 30대의 열정을 단단히 붙잡고 일하는 게 목표다.

 “고백하자면 부산행이 너무 잘돼서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영화가 크게 잘되고 나니 이상하게 혼자만의 작업이 그리워지네요. 그래서 요샌 아침 시간을 쪼개 만화를 그려요.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대중성을 고민하다 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하는 갈증이 느껴졌거든요. 새해에도 다음 영화를 ‘즐겁게’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제 소망입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