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목소리는 성대에서 만들어진 진동이 성도(음이 가는 길)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진동이 커지거나 작아지면서 공명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사람마다 성대나 음이 가는 길, 발성기관의 모양이나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공명현상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목소리 공부를 하던 A 군이 가장 흥미를 느낀 부분은 범죄 사건에서 범인을 찾는 데 유전자, 치아, 코의 형태, 입술 무늬 등 신체적 특징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게 목소리라는 것이었다. 궁금해진 A 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음성분석실 김 박사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만약 범인이 코를 막고 목소리를 숨기려고 하면 다르지 않을까? 박사님은 코를 막고 ‘여보세요’라는 말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얻은 그래프 무늬와 앞서 정상적으로 말해서 얻은 무늬는 신기하게도 똑같았다. 아무리 목소리를 감추려고 해도 저마다의 목소리 특징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성문 분석의 역사
범인을 식별하는 단서로 음성이 처음 이용된 것은 1660년 영국 찰스 1세의 죽음과 관계된 재판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음성을 들은 사람에게 용의자 음성과 범인 음성을 들려주고, 동일인의 음성인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이후 1927년 비행기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린드버그의 아들이 유괴 살해된 사건에서 음성으로 범인을 확인하는 것에 대한 신뢰성이 문제가 되면서 음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음성감정 연구를 시작해 1987년 ‘원혜준 양 유괴사건’ 범인을 검거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1996년 지하철 폭파 협박사건과 1997년 박나리 양 유괴사건에서도 음성감정을 통해 범인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 과학수사에 활용된 음성분석
과학수사에서 음성분석은 유괴사건, 지하철 폭파 협박사건, 독극물 협박사건 등 각종 협박사건 및 전화폭력 사건에서 범인 음성을 식별하고, 사건 현장에서 발생한 사람 음성 이외의 소리를 분석해서 수사에 단서를 제공한다.
음성 이외의 소리가 수사에 단서를 제공한 사례도 있는데 2007년 9월 전남 보성군 70대 어부가 한 달 새 4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었다. 전남 고흥군 해안에서 발견된 두 명의 시신 중 한 명의 휴대전화를 통해 2007년 8월 31일 총 4회에 걸쳐 말 없는 전화가 119에 걸려온 기록이 있었다. 국과수는 음성분석을 하던 중 아주 독특한 기계음이 들렸고 이 소리가 엔진 소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데 엔진 소리는 엔진의 사용연도에 따라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보성경찰서의 사건담당 형사와 상의해 인근에 있는 통통배를 파악했다. 인근에 27척의 통통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각각의 엔진 소리를 녹음해 보내도록 했다. 분석 결과 119 통화 내용에 포함된 기계음과 용의자 소유의 선박 엔진음이 정확하게 일치해 강력범죄 수사상 드물게 음향 분석의 결과가 결정적 근거가 되어 범인을 검거한 사건이 됐다.
○ 사람은 어떻게 목소리를 인식할까?
소음 등으로 용의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우선 주변의 시끄러운 음을 제거하고 이 목소리를 언론매체를 통해 방송해 이 목소리를 아는 사람들이 신고하도록 한다. 유괴범이나 협박범의 음성이 방송으로 알려지면 수많은 사람이 그 목소리와 유사한 음성을 가진 사람을 안다며 제보한다.
실례로 1987년 원혜준 양 유괴 사건 때 녹음된 범인의 음성과 비슷한 50여 명의 음성을 분석하여 동일인의 음성을 확인했고, 박나리 양 유괴 사건 때도 목소리가 범인을 특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같이 모든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의 음성을 듣고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데,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반복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음성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우리 뇌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쉽게 식별하지 못한다.
::공명현상::
소리를 내는 물체가 외부 음파에 자극을 받아 그와 동일한 진동수의 소리를 내는 현상.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