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하얀 설탕이 곱게 뿌려진 토마토 슬라이스를 준비해 주셨다. 촉촉하고 달콤했던 토마토는 그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다. 내가 살던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든 것이 넉넉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어 보았던 오므라이스. 불룩한 모양에 빨간 토마토케첩으로 줄이 그려져 있고, 어느 나라인지도 모를 국기로 중앙을 장식한 요리는 황홀했다. 오므라이스가 오믈렛과 라이스의 합성어인지조차 모르는 나이였다.
식물학적으로 나눠 볼 때 토마토는 과일류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채소로 알고 있다. 1893년 미국 대법원에서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당시 토마토가 디저트가 아니라 요리의 재료로 주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채소로 구분됐고 억울하지만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어린 시절 토마토를 마치 과일처럼 설탕 뿌려 내주었던 어머니는 토마토가 과일이라는 걸 아셨던 걸까. 하지만 그 시절 내가 먹었던 토마토는 싱싱한 야채 맛에 가까워 설탕의 달콤함만 기억나게 한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는 파란 상태로 따 진열대에서 숙성된 게 대부분이다. 제대로 익은 상태에서 딴 토마토는 풍기는 향부터 다르다. 생으로 먹든, 조리를 하든 최고의 식재료가 주는 맛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미각의 시작이다.
1975년 내가 처음 남미로 배낭여행 갔을 때였다. 콘 토르티야와 함께 먹은 토마토살사(다진 고수와 향신료, 양파와 라임주스를 짜 넣은 잘게 썬 토마토 요리)는 남미의 태양열을 흠뻑 맞은 것 같은 자연의 맛과 상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27세가 돼서야 제대로 된 토마토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후 미국 뉴욕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시절, 주방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요리사들로 북적였다. 보통 식당은 점심 서빙 시간이 끝나고 오후 3시쯤 직원 식사가 시작된다. 각국 요리사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준비하는 요리는 요리학교가 아닌 그들의 엄마나 할머니가 해주던 토속적인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손님들에게 나가는 요리를 제쳐두고 직원 식사에 더 열을 올리며 동지애를 키우고 주방에서 일하는 기쁨을 찾았다.
특이한 소스나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에는 침을 튀기며 칭찬을 했다. 비위를 잘 맞춰 기분이 좋아지면 으쓱대며 자기 집안의 숨겨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알게 된 레시피를 사용할 때면 요리했던 친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비슷한 요리라도 만드는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완성되는 게 손맛이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미트소스조차 다 다르다. 어떤 요리사는 고기 덩어리를 통으로 토마토소스에 넣고 3∼4시간 끓여 익힌 후 고기는 애피타이저로 먼저 꺼내 먹고 고기즙이 진하게 우러난 소스에 파스타를 넣는다. 이게 나폴리탄 토마토소스다. 다진 고기를 뭉치고 소스와 함께 맛을 낸 미트볼 파스타, 부스러기 고기조각을 손으로 다지고 익혀서 라사냐나 볼로녜세 파스타를 만들기도 한다.
멕시코의 살사는 소스라는 뜻으로 여러 요리에 사용된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 생선, 여러 가지 주재료와 곁들어지는데 메인 요리뿐 아니라 아침식사로 달걀과 함께 곁들여지기도 한다. 토마토는 그 색이 강렬해 영화의 음식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나는 ‘대부’라는 마피아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 속에서 가족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장면을 보면 우리 요리사들이 직원 식사를 준비할 때 “우리 엄마가 최고의 요리사”라고 자랑하며 흥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대를 이어 만들어진 토마토소스는 모든 세계 요리의 기본이고 중요한 소스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인스턴트의 나라 미국에서는 케첩을 능가하는 토마토소스는 없다. 그들은 말한다. “맛이 없으면 케첩을 뿌려라”라고.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