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베 총리와 방위상의 가미카제 찬미 한미일 안보 협력을 곤경에 빠뜨리는 망언 미군이 가미카제 조종사 수장식 치러준 것은 용기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인간적 연민
황호택 고문
작년 여름 미국 하와이에 있는 미군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한 길에 진주만에서 기념관으로 변신한 미주리함을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1월 진수한 이 전함은 맥아더 원수가 일본 왕을 대리한 외상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은 배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인천상륙작전 때 지원 포격을 했고 흥남상륙작전과 철수작전에도 참여했다.
미주리함 기념관에는 일본군 가미카제 폭탄기가 날아와 충돌한 자리에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1945년 4월 오키나와에서 작전 중이던 미주리함에 가미카제가 돌진해 충돌했으나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불길도 바로 진화됐다. 미주리함의 해군 병사들은 전투기 잔해 속에서 조종사의 시신을 거두어 다음 날 아침 정중한 수장식을 치러주었다. 미주리함 기념관에는 적에 대한 ‘인간적 연민(human compassion)’에서 예우를 해주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어디에도 가미카제 조종사의 용기를 치하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았다.
이다는 귀환이 불가능해지자 자살공격을 했지만 미주리함을 공격한 조종사는 처음부터 기지로 귀환할 수 없는 인간폭탄이었다. 무리한 전쟁으로 전력이 바닥난 절망적 상황에서 가미카제 작전이 의외로 전과를 거두자 일본군은 특공 조종사의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44년 10월 25일부터 1945년 항복할 때까지 특공기가 무려 2367대나 출격했다. 그만큼 젊은 목숨이 폭탄을 싣고 사라졌다는 말이다.
가미카제 폭탄기는 착륙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전쟁 막판에는 물자를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빼버렸고, 이륙과 동시에 바퀴 타이어를 이탈시키는 연구까지 했다. 인간의 생명이 타이어만도 못했던 것이다.
20대 초반의 학도병 출신 조종사들은 과연 죽음 앞에서도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을까.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전사하면 “군신(軍神)이 되어 신사에 모셔진다”는 감언이설로 젊은이들을 현혹했다. “그들은 폭탄기에 오르기 전 고개를 떨구었고 걸을 기력조차 없어 군인들이 끌고 가 조종석에 밀어 넣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쇼와 육군’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인간 자체가 폭탄이 되고 전쟁무기의 부품이 되는 이 작전은 태평양전쟁을 통틀어 가장 비극적이었다”고 기록했다.
동북아는 중국의 패권주의와 북한 김정은의 핵 위협으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싸여 있다. 강대국과 불량국가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 힘만으로 불가능하고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일본과도 군사적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는 한미일 공조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아베와 이나다의 가미카제 발언에선 아시아인을 전쟁의 참화와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전쟁범죄와 꽃다운 젊은이들을 전쟁무기의 부품으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 반성은 한마디도 없었다.
황호택 고문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