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73)이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총장 관저를 떠나면서 자신이 '경제 대통령'과 '소통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관저를 떠나기에 앞서 귀국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 세계적 경제 석학 중 한 명이자 유엔 사무총장 특별자문관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를 배석시켜 "(삭스 교수와) 한국의 경제 위기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은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오래 공부하고, 고등교육도 받고, 직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열심히 일한다. 이런 젊은 층과 노년층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필요한 경우에 (해법도) 제시하고, (관련)협의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삭스 교수는 이날 반 전 총장의 기대에 부응하듯 "반 전 총장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그런 노력을 어떻게 한국에 접목할지에 대해 (나와) 논의했다. 세계가 그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한국인들은 그를 자랑스러워 할만하다"고 극찬을 쏟아냈다. 또 "반 총장의 자문관으로 일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그를 너무나 존경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떤 조언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비공식 자문관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반 전 총장은 또 이른바 '제3지대 출마설'이나 '신당 창당설' '사회 대통합의 스웨덴 정치모델 추구' 같은 일련의 보도에 대해 "지금으로선 할 말이 없다"거나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국이 지금 겪는 어려움은 (지도자가 국민과) 대화 안 한, 이른바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며 "나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는 전 세계 누구와도 대화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 10년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은 모든 걸 대화를 통해서, 가급적 광범위한 사람들과, (다양한) 그룹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라며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닦은 것들을 한국에서 한번 실천해 보겠다 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신년 인사 전화를 한 반면, 매년 해오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신년 통화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른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귀국해서 필요하면 (박 대통령에게) 전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은 '이달 15일경 귀국하려던 일정을 사흘 앞당겨 12일 오후 5시 반경(한국 시간) 아시아나 항공기 편으로 귀국하는 이유'에 대해선 "(휴일인) 일요일(15일)에 도착하는 게 (기자) 여러분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여러분 근무일(12일·목요일)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부터 귀국 직전까지 약 일주일 간 미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속의 한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핵심 측근들과 '귀국 후 대선 행보'에 대한 구상과 계획을 짤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유엔 소식통은 "반 전 총장이 1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권 도전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