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12조원 투자이끈 아일랜드 바이오 실험센터… “맘껏 실패하라”

입력 | 2017-01-05 03:00:00

[4차 산업혁명 최전선을 가다]<3> 官-産-學협력 교육기관의 효과
글로벌 제약사들, 최고수준 인재-인프라에 매료돼 앞다퉈 진출




《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남동쪽에 위치한 더블린대(UCD) 캠퍼스. 이곳 한 자락에는 아일랜드 정부가 세운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NIBRT)’가 있다. 아일랜드 정부 주도로 2011년 현지 종합대학 7곳과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협력해 만든 교육기관이다. 지난해 12월 12일(현지 시간) 이른 아침 방문한 연구소는 하얀색 가운 차림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훈련생들로 활력에 넘쳤다. 킬리언 오드리스콜 NIBRT 프로젝트 디렉터는 “NIBRT는 바이오 업계의 ‘비행 시뮬레이션 센터’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대학과 기업이 최첨단 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 기기를 써보며 실수도 하고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곳이란 얘기다. 》


 

2016년 한 해 동안 4000여 명의 학부·대학원생, 글로벌 제약사 연구원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오드리스콜 디렉터는 “연말인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온 20여 개 바이오제약 기업 직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고급 교육기관 설립해 글로벌 기업들 유치

 NIBRT는 세계 바이오제약 산업에 고급 인력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오드리스콜 디렉터는 “기존 화학 제약산업이 ‘자전거’라면 바이오테크놀로지 산업은 ‘항공기’다. 훨씬 더 까다로운 기술과 공정 때문에 숙련된 인재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NIBRT는 아일랜드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으로 꼽히는 바이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대표 사례다. 아일랜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와 더불어 3대 바이오 클러스터로 주목받고 있다. 자생적으로 바이오밸리를 형성한 미국과 달리 아일랜드는 정부 주도로 2000년대 중반부터 관-산-학을 연계한 바이오 생태계 조성에 애써 왔다. 한국도 인천 송도, 대구, 충북 오송 등에서 클러스터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초기 단계다.

 베리 히비 아일랜드투자청(IDA) 생명과학 및 엔지니어링 본부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다 보니 10년 전부터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부상을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NIBRT 설립 아이디어도 미국 글로벌 제약사 와이어스(화이자에 인수됨) 등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NIBRT 설립 자금으로 5700만 유로(약 721억 원)를 투자했다.

 정부의 지원과 교육 인프라가 뒷받침되자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은 아일랜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약 100억 유로(약 12조6370억 원)의 바이오테크 관련 투자가 일어났다. 미국 BMS는 2014년 9억 유로(약 1조1373억 원)를 들여 대규모 바이오 생산시설을 짓기 시작해 2019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NIBRT와 100만 유로(약 12억6370만 원) 규모의 공동 연구도 시작했다. 오드리스콜 디렉터는 “BMS는 투자 결정 요인의 절반은 NIBRT가 아일랜드에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NIBRT에서 지난해 열린 취업 박람회에서 신규 직원을 뽑기 위해 참여한 글로벌 제약사 BMS 직원들. NIBRT 제공



○ ‘글로벌 기업 유치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믿음

 아일랜드는 1937년 독립 이후 낮은 법인세(현재 12.5%)로 글로벌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며 급성장해 ‘켈틱 타이거’로 불린다. 2010년 재정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3년 만에 졸업한 뒤로는 ‘켈틱 피닉스(불사조)’라는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2015년 경제성장률은 7.8%에 달한다.

 아일랜드의 경제 신화는 글로벌 기업과의 네트워크,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이 주효했다. 그중 하나가 바이오제약 분야다. 바이오는 특히 뭉쳐야 시너지가 난다. 대학의 혁신적 연구, 기업의 자본, 현지의 생산시설이 맞물려야 하는 것이다. 의학뿐 아니라 공학, 정보기술(IT) 등의 융합도 필요하다.

 히비 IDA 본부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낮은 법인세 하나 보고 오는 게 아니다. 바이오 산업의 핵심인 연구 수준, 인재, 생산 인프라를 보고 온다”고 강조했다. 마크 퍼거슨 아일랜드 과학재단(SFI) 원장은 “정부가 나서 글로벌 기업과 아일랜드 현지 대학이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대학 졸업생의 28%가량이 이공계인 데다 세계 최고의 면역학 수준, 유럽연합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낮은 법인세를 두고 특혜 시비는 없느냐는 질문에 앤드루 보글라 IDA 이머징마켓 본부장은 “몇 년마다 정부와 집권 정당이 바뀌어 왔지만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글로벌 기업이 투자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생겨 아일랜드 경제가 발전한다는 믿음”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바이오클러스터 육성의 낙수효과는 일자리 창출과 현지 기업의 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제약사의 직접 고용은 현재 2만5000명 수준이다. 현지 기업인 DPS엔지니어링은 화이자, 얀센, 사노피 등 글로벌 바이오 제약사의 생산시설 설계 등을 맡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톰 켈리 엔터프라이즈아일랜드(EI) 본부장은 “글로벌 바이오제약사 덕에 관련 분야 창업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해외 기업 및 기관 유치에는 쉼표가 없다. 최근에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런던에서 ‘이사’를 해야 할 유럽의약청(EMA)을 더블린으로 끌어오기 위해 보건장관이 직접 뛰고 있다. 규제 기관이 오면 기업도 따라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몇몇 정부 기관 관계자는 “바이오 투자를 늘리는 삼성이 유럽에 본부나 생산시설을 세운다면 아일랜드가 적격일 것”이라며 기자에게도 마케팅에 나섰다.

더블린=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