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엄마의 극성이 국정 농단의 출발
최순실은 다른 모든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정유라의 장래를 위해 엄마로서 욕심을 부렸다는 점은 인정했다. 마흔 살에 얻은 무남독녀 정유라에 대한 최순실의 사랑은 그야말로 맹목적이었다. 우선 ‘강아지 게이트’. 최순실이 정유라의 강아지들을 고영태에게 잠시 맡겼는데 고영태가 강아지를 돌보지 않고 골프를 치러 가 최순실과 사이가 벌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고영태는 의상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비선의 존재를 폭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이 주변 시선 때문에 딸이 한국에서 아이를 기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독일 정착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에서 돈을 받아낸 것이라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실제로 최순실이 독일 영주권을 받아 정착하려 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국정 농단의 출발점이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지극히 사적인 동기라니 한편으론 기가 차고 한편으론 허탈하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승마 스타가 되어 탄탄대로를 걷기를 원한 엄마 바람대로 정유라가 자라주지 않은 것이다. 정유라는 학창시절 엄마에게 끊임없이 반항하고 가출을 반복했다고 한다. 급기야 고3 학생으로서 남자친구와 동거에 들어갔고 출산도 했다. 정유라에게 대학 간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학교에 가지 않아 ‘아웃’된 줄 알았는데 학점이 나왔다고 했다.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특혜를 부인하기 위해 꾸며낸 말일 수도 있겠지만 평소 학교생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성품으로 볼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정유라는 덴마크에서 기자들에게 아끼던 고양이가 죽은 이후 “말을 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순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돈을 들고 기다리는 삼성이 있고 대통령이 뒤를 받쳐주는데 아기까지 낳은 자식이 승마를 접고 싶어 하니 말이다. 승마만 해준다면 까짓것, 뭐든 받아주겠다고 생각하고 독일에 집도 사고 남자친구도 받아주고 고양이와 강아지도 실컷 키우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엄마들이 흔히 ‘전교 1등만 하면 원하는 거 다 해줄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성취만 강요하는 분위기 문제 있어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