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으로 받은 그리스 청동투구.
20세기 전반기엔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 유물을 부상으로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마라톤이 그리스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에선 그리스의 한 신문사가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부상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아마추어 선수에겐 메달 이외에 어떠한 부상도 줄 수 없다”며 손기정에게 투구를 전달하지 않았다.
손기정은 이런 사실조차 모른 채 귀국했다. 일제는 이를 알려주지도 않았고 투구를 달라고 건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970년대 손기정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투구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투구가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반환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반환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독일올림픽위원회는 진품은 돌려줄 수 없고 복제품 반환은 가능하다고 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제작된 이 청동투구는 1875년 독일 고고학 팀에 의해 올림피아 제우스신전에서 발굴되었다. 투구는 전체적으로 당당하다. 이마 부분에서 아래로 잘록하게 들어갔다가 목 부분에서 나팔처럼 쫙 펼쳐지는 모양새가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이렇게 완벽한 원형을 유지한 청동투구는 그리스에도 드물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그 낭보를 알리기 위해 먼 길을 숨차게 달려온 그리스 병사. 그 병사도 코린트 청동투구를 쓰고 전투에 참가했던 것일까. 그를 기리기 위해 시작된 마라톤. 식민지 조국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던 손기정에게 이 청동투구는 참 잘 어울리는 부상이었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