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시험이 대폭 간소화된 2011년 6월 서울 강남면허시험장. 기존 ‘S자 코스’와 ‘T자 코스’ 등 11개 코스에 700m를 주행해야 했던 시험이 2개 항목, 50m로 줄어들면서 합격률이 50%대에서 95%로 치솟았다. 동아일보DB
석동빈 기자
그런데 정작 상향등을 켜고 다니는 가해 운전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모릅니다. 그들은 상향등 사용법을 아예 모르거나 실수로 켜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두 부류로 나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포퓰리즘 정책이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직후 규제 완화를 외치며 여러 가지 법과 정책에 변화를 줬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운전면허시험 간소화와 틴팅(선팅) 규제 완화입니다. 대부분의 전문가와 관련 기관은 반대를 했지만 결국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두 가지 모두 시행되고 말았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운전면허를 따기 쉽고, 유일하게 틴팅 규제가 사문화된 국가가 됐습니다. 한때 중국인들이 운전면허를 따러 한국에 몰려오면서 중국 당국이 한국에서 취득한 면허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 왜곡된 정책은 좀처럼 바로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찰청이 지난해 12월 22일부터 ‘T자 코스’ 부활 등 기능시험을 강화하면서 합격률이 크게 떨어지자 ‘불면허’라며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1996년까지 운전면허시험에는 T자는 물론이고 악명 높던 ‘S자 코스’가 있었습니다. 2종 보통면허는 S자 코스를 전진으로 통과하면 됐지만 1종 보통은 들어간 뒤 다시 후진으로 나와야 하는 고난도 묘기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학원에서 공식을 배운 운전자들은 어렵게나마 통과를 할 수 있었죠. 현재 시험보다 훨씬 까다로웠지만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공식대로만 하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어서 실질적인 운전 능력을 올려주는 시험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해외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한국은 현재 강화된 의무교육 시간이 기능 4시간, 도로주행 6시간입니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15시간 이상 주행을 해야 하고, 특히 고속도로와 야간 주행까지 이수해야 시험 자격이 갖춰집니다. 최소 3개월 이상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운전과 친숙해지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니다. 심지어 스웨덴은 빙판길 주행까지 연습 과정에 포함시켰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자동차 선진국도 유럽만큼은 아니어도 한국보다는 운전면허 취득 과정이 험난합니다.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심각하고, 골목길과 커브길도 많아 교통 환경이 열악하지만 운전면허 취득에 들어가는 노력은 절반도 안 됩니다. 아직도 ‘물면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틴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엄격한 틴팅 규정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가시광선 투과율이 전면 유리는 70%, 운전석 및 조수석의 옆 유리는 40% 이하로 떨어지면 안 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 2만 원을 부과하는 법 규정이 있지만 이명박 정부 때 단속을 중단시키면서 사실상 사문화됐습니다. 경찰청은 전체 자동차의 70%가 넘는 1500만 대에 틴팅이 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짙은 틴팅으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추정만 할 뿐 단속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운전자와 관련 업계의 저항감이 커서 정치적인 결단까지 필요한 사안인 데다, 현실적으로 투과율을 측정할 장비도 없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으로 망가진 법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워 보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