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말 비교분석 책 펴낸 박노평 前김책공업대 교수
박노평 씨가 자신의 책 ‘평양말·서울말’을 들고 있다. 박 씨는 “탈북자 3만 명의 언어를 이해해야 2000만 인민의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며 “남북한 언어 통합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희수(喜壽·77세)를 넘긴 노학자는 아직도 열의에 넘쳤다. 2005년 탈북한 박노평 씨(78)는 북한 공학 분야 최고 수재들만 모인다는 김책공업종합대에서 37년간 교수로 재직한 금속공학 전문가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남북한 언어 비교연구서를 냈다. 최근 출간된 ‘평양말·서울말’은 박 씨가 10년간 수집한 자료를 모아 2년 넘게 집필한 결과물이다.
박 씨는 아들이 남한 노래를 몰래 부르다 발각돼 정치범이 된 것을 계기로 가족과 함께 탈북했다. 남한에서 북한의 지위와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기에 2006년 작은 빌라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근무시간이 길어 출퇴근이 여의치 않자 평일에는 1평(3.3m²) 남짓한 경비실에서 먹고 잤다.
그날부터 박 씨는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북한말과 다른 남한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좁은 경비실에 컴퓨터를 들였고 자비로 국어사전을 샀다. “남한말 사전은 쉽게 구했는데 북한의 조선문화어대사전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집에 복사기를 들인 다음 도서관에서 대여한 3000쪽이 넘는 사전을 다 복사했죠. 꼬박 이틀이 걸렸어요.”
쉬는 날이면 전국을 돌아다녔다. 탈북자들을 만나 자료를 수집하고 자문을 하기 위해서다. “김일성종합대 어문과 출신 탈북자가 부산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까지 내려간 적도 있어요. 강원도로 이사 갔다는 말에 강원도 탈북자단체 곳곳을 돌며 수소문했는데 결국 한 교회에서 찾았죠.” 그 덕분에 박 씨는 북한말 역사와 사어(死語)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조사를 할수록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은 크게 다가왔다. 특히 탈북자들이 남한말을 모르는 만큼 남한 사람들도 북한말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통일부 자료에조차 잘못된 북한말이 쓰여 있었어요. 먼지를 북한말로 ‘몽당’이라고 한다는데 저뿐만 아니라 다른 탈북민들도 처음 듣는 말이에요. 없어진 말이거든요. 거짓말은 ‘꽝포’라고 소개하던데, 북한에서도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탈북자 한 사람에게 들은 정보나 옛날 문서에 적힌 것을 검증 없이 적용한 거죠.” 박 씨는 개탄했다.
10년여의 작업을 집대성한 그에게는 이제 더 큰 숙제가 남았다. “제 전공 분야인 과학기술처럼 전문 분야 용어들을 비교연구하고 싶어요. 통일이 되면 남북이 힘을 합쳐 경제와 과학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하면 안 되잖아요.” 박 씨에게 ‘언어의 휴전선’은 그 어떤 휴전선보다 먼저 걷어 내야 할 숙제다. “말이 통해야 마음이 통합니다. 말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통일의 한 단계도 나아갈 수 없어요. 여기서 제가 받은 도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남은 생을 ‘언어의 통일’에 헌신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