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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의 독서일기]직유가 난무하는 세상, 은유가 그립다

입력 | 2017-01-06 03:00:00

G 레이코프-M 존슨 ‘삶으로서의 은유’




 먹종이 같은 하늘, 달빛이 보름달 주위로 모여들 즈음 술은 벌써 몇 순배를 돌았다. 취기어린 노시인의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오래전 세월을 부르는 것 같았다. 시인이 꺼낸 시집의 제목은 ‘초혼’(고은 지음)이었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하나보다. 마른 손이 잡고 있는 작은 책자가 과거로 통하는 문처럼 생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언제쯤이었을까? 어느 때, 어느 곳의 기억이 호출된 걸까? 시인에게 과거나 현재는 의미가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낭송이 시작됐을 때 달은 조금 더 높이 떴다. 제목을 읽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기까지는 조금 간격이 있었다. ‘직유에 대하여’라는 시 제목을 말하는 소리는 그저 일상적인 목소리였지만 시가 시작되면서는 약간 격앙되는 것 같았다.

  ‘똥이다 할 때/똥에게 죄송하다/여우같은 할 때/여우에게 죄송하다/독사의 자식 할 때/독사와/독사 조상에게 죄송하다/개 같은 할 때/개들에게/태어날 개들에게 죄송하다//쥐새끼 같은 할 때/김재규가/차지철에게 버러지 같은 할 때/쥐새끼에게/버러지에게 죄송하다/하이에나/늑대 할 때/그들에게/그들의 탄자니아 초원에게 죄송하다/소위 잡초들에게 죄송하다/옥에 대한/돌에게 바위에게 죄송하다/지옥이라니 이글이글 지옥 유황불이라니/지하에게 죄송하다//언어는 이미 언어의 죄악인 것’

  ‘똥이다 할 때 똥에게 죄송하다’가 머릿속을 흔들고 있는 사이에 시는 ‘죄악인 것’으로 끝이 났다. 빗대었던 모든 직유가 무너져 내리고 생각은 허공 속에 발버둥쳤다.

 “개떡 같은 세상.”

 가슴속에 돌덩이처럼 뭉쳐있는 말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직유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라면 은유는 잘 다듬어진 보석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속 은유 회로를 통과한 말들은 굳어버린 사고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닌다. 뱀이면 어떻고 코끼리면 어떤가? 장미나 여우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모든 은유의 문이 열릴 것이다.

 노시인의 직유와 언어에 대한 사죄가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삶은 빚투성이다. 특히 언어로부터 빌려온 부채는 너무나 크다. G 레이코프와 M 존슨이 쓴 ‘삶으로서의 은유’는 철학과 언어학에서 주류로 간주돼 온 객관주의가 실제 언어와 사고의 많은 부분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간과할 때에만 가능한 견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은유가 언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행위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가슴 깊이 동의한다. 이 책을 통해 언어에 대한 부채감을 조금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반대일 수도….
 
김창완 가수·탤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