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기자
한 출판계 관계자는 최근 ‘송인서적 사태’와 관련해 대형마트의 이름을 거명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2위 출판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2일 쓰러지면서 중소형 출판사와 서점이 줄폐업 위기에 처했지만 문체부가 대처하는 속도가 너무 더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형 악재가 터지면 해당 정부 부처는 긴급 브리핑을 하거나 대책 자료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출판계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적립금 가운데 일부를 저리로 융자해 주거나 중소기업청과 협의해 중소기업 융자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지원 금액이나 집행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단다. 그는 “출판문화진흥재단 적립금을 사용하려면 출판계가 동의해야 하는데, (출판사별 입장에 따라) 원할 수도 있고 원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송인서적 사태로 출판사와 서점이 입은 피해액이 700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체부는 채권단에서 피해 금액을 집계하고 있어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출판계에서는 중소형 출판사나 서점 중 송인에 100% 의존하던 곳이나 5인 이하 사업장 혹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정하고 일단 1차 지원금이라도 확보해 하루라도 빨리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줄폐업을 막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중소형 출판사와 서점이 사라지면 당장 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지역 문화 공간이 없어져 장기적으로 국민들에게 손해가 갈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논란을 초래하며 문화계 인사에 대한 지원을 쥐락펴락할 게 아니라 이런 대형 악재에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문체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이다. 국회도 함께 나서야 한다. 출판계 역시 이른바 ‘문방구 어음’을 끊어주는 등 케케묵은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유통 투명화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문화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나 이를 회복하려면 가늠하기 힘들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망가지기 전 빨리 진화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