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재판에서 제조업체 임직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2011년 4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뒤 약 5년 반 만에 처음으로 제조사 관계자의 유죄를 인정한 형사 판결이 나온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6일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피해자들을 폐손상으로 사상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으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69)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대표에 대해 "살균제 원료 물질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았고 실증자료가 없는데도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거짓 문구 등을 용기 라벨에 표기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신 전 대표에게 선고된 징역 7년형은 업무상과실치사상과 표시광고법위반 혐의를 합쳤을 때 가능한 법정 최고형이다.
사망 14명 등 27명의 피해자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제조사 오모 전 대표(41)에게도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신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전 옥시 연구소장 김모 씨와 현직 소장 조모 씨는 모두 징역 7년, 선임연구원 최모 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옥시 법인에게도 표시광고위반법 최고형인 벌금 1억50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해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며 신 대표 외 대다수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 또는 비슷한 수준의 형을 선고했다.
다만 신 전 대표에 이어 옥시 대표를 지낸 존 리 전 대표(49)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리 대표) 재직 당시 옥시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안전성이나 라벨 표시문구가 거짓임을 의심할만한 보고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직접 보고관계에 있던 외국인 임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일부 직원들의 추측성 진술만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들이 사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들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상습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신 전 대표 등은 2000년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제조·판매하며 제품에 들어간 독성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181명의 피해자(사망 73명)를 발생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로 기소됐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