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어떻게 될까. 금박무늬 있는 커피잔을 넣으면 금박이 까맣게 그을리는 것과 똑같다. 금속인 상·하단 부분의 블루투스 안테나가 가장 빨리 타들어 가고 이어 배터리 연소로 이어져 결국 불이 난다. 통화기록이 보관된 메모리칩도 금속이므로 예외가 아니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전류를 유도하는 작용이 있어 전류가 흐르지 말아야 할 도선에 전기가 흐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과열되면서 불꽃이 튄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라고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관련자들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다. 해당 문건에는 휴대전화 액정 우측 상단 3분의 1 지점을 집중 타격하고 위치추적이 안 되는 강에 폐기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휴대전화가 침수되거나 파손되면 메모리칩을 따로 빼서 복구할 수 있지만 메모리칩 자체가 훼손되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에 던지는 것이 가장 철저하게 휴대전화 증거를 없애는 방법이라고 한다. 다만 액정 우측 상단 3분의 1 지점을 부수라는 건 잘못된 정보다. 메모리칩 위치는 모바일 기기마다 천차만별이고 그나마 우측 하단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전문적인 방법이 경제학자인 안 전 수석의 머리에서 나올 리는 없다. 디지털 포렌식에 정통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 수석이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나 오갈 것 같은 증거인멸 방법을 문건으로 만들어 전달했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정작 안 전 수석은 자신의 휴대전화와 증거인멸 지시를 담은 문건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깨알처럼 받아 적은 업무수첩 17권을 검찰에 고스란히 빼앗겼으니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 최순실과의 통화 내용이 녹음된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와 함께 이 업무수첩은 박 대통령의 혐의를 가리는 중요한 물증이 됐다. 안 전 수석의 세심함 혹은 게으름에 축복 있으라.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