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목고 ‘예비 부모교육’ 현장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양천구 신목고에서 열린 ‘청소년 대상 예비 부모교육’ 현장. 각각 남편과 아내 역할을 한 이혁진 군(17)과 김현경 양(17)이 상황극을 선보이고 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미안해. 그동안 내가 무심했어. 아이는 내가 볼게.”(이혁진 군·신목고 1학년)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양천구 안양천로 신목고 도서관에서는 ‘특별한 수업’이 열렸다. 도서관에 모인 1학년 12반 여학생들은 가사, 육아를 도맡아 정신없이 바쁜 ‘워킹맘’이, 남학생들은 ‘할 줄 모른다’는 핑계로 가사나 육아를 아내에게 미루는 남편이 되어 부부가 다투는 상황극을 선보였다.
이날 상황극은 최근 여성가족부가 일선 중고교에 보급하고 있는 ‘청소년 대상 예비 부모교육’의 일환. 여가부는 2015년 말, 지난해 초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그 대책으로 부모교육을 내놓았다.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인 현실을 개선하려면 바람직한 부모 되기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여가부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에 노출된 취약 가정을 대상으로 일대일 상담 등 교육을 진행 중이다. 동시에 일반 가정의 경우 청소년, 대학생, 군 장병, 임신·출산 등 생애주기별 맞춤 교육을 하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 고정관념까지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점을 볼 수 있었다. 1학년 12반 여학생들은 배우자 선택 기준으로 성격, 경제력, 직업을 꼽았고, 남학생들은 성격, 외모, 경제력을 중시했다.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을,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와 일치했다. 상황극에서 남편 역할을 맡았던 이 군은 “아이에게 만화 ‘뽀로로’를 틀어주는 게 아이를 돌보는 바람직한 방법인 줄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건 아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해 처음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육승희 교사는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성인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수업에는 강은희 여가부 장관도 참석했다. 1시간 동안 부모교육 수업을 모두 지켜본 강 장관은 학생들에게 “앞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 집안일과 바깥일을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부모가 되려면 12번 이상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부모교육을 열심히 받아 나중에 훌륭한 가정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