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장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친(親)러시아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에 가장 고무된 참석자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였다. 그는 “중국과 싸워 온 역사를 보나, 긴 국경선을 보나 러시아는 미국이 잘못된 친중 정책을 버린다면 기꺼이 옆에 설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와 함께 8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만찬에 초대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쇠락해가는 러시아가 주변국에 대한 영토 주장 등 모험을 강행하지 않도록 경제와 에너지 제재는 필요하다. 다만 다양한 글로벌 이슈들에서 공동의 이해를 찾을 필요는 있다”며 유보적인 태도였다.
“중국이 지금처럼 부상한다면 미국이 서구를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를 차지하려 할 겁니다. 중국이 지역 헤게몬(패권자)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미어샤이머 교수)
“중국 경제가 2030∼2040년 미국을 추월해도 1인당 국민소득은 여전히 미국이 앞섭니다. 중국은 ‘하드 파워(군사력)’와 ‘소프트 파워(경제와 외교, 문화 등)’에서 미국에 뒤질 겁니다. 중국을 봉쇄할 필요가 없어요.”(나이 교수)
공방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참석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키신저 전 장관이 공화당인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물꼬를 텄다면 이어지는 민주당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후임자 역할을 맡은 당대 미국 전략가다.
“솔직히 러시아는 미국이 중국을 다루는 데 뭔가를 해줄 만한 상대방이 못 됩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아무리 몰락해도 1등 국가이며 자신도 거의 1등임을 알아요. 누구도 홀로 국제정치사를 다룰 수 없어요.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미국에 장기적 이익이에요.”
키신저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 정권은 붕괴할 겁니다. 그럼 한반도 북반부에 공백이 생기겠죠? 그때 모든 주변국들이 그 공백 속에 뛰어들지 않도록 미중 양국은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대해서도 상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본격적인 트럼프 시대 개막을 앞두고 국제부 데스크를 맡게 된 필자가 사뭇 험난할 것 같은 한 해를 준비하며 석학들의 생각을 재구성한 ‘팩션(사실에 기반을 둔 허구)’이다. 취임 전 트럼프는 대중국 정책에서 미어샤이머 교수(지난해 11월 27일 내셔널인터레스트 기고)의 조언을 따를 태도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하나가 죽으면 상대방도 죽는 상호확증경제파괴(MAED·Mutually Assured Economic Destruction)의 관계인 것을 인정한다면 나이와 브레진스키, 키신저(지난해 11월 10일 더 스트래터지스트 기고, 지난해 12월 23일 더 월드 포스트 인터뷰, 지난해 11월 19일 페이스 더 네이션 인터뷰)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초미의 관심은 대러시아 관계다. 1972년 2월 역사적인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20년 뒤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언했던 키신저. 그는 “크림 반도가 러시아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자”(지난해 12월 28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며 트럼프 편을 들 기세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