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만든 적도 없다”며 강력 부인하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마지막 청문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지금도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무려 18번 던진 끝에 조 장관으로부터 “정치적 성향이 다른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명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러나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거듭 부인했다. 위증죄로 고발돼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할 조 장관이 장관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특히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어제 구속영장이 청구된 4명 중 2명은 조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비서관으로 함께 근무한 것으로 드러나 조 장관의 연루 가능성도 적지 않다. “주무 장관으로서 문화·예술인과 국민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드린다”는 발언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이념과 입맛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블랙리스트 진상은 어제도 속 시원히 드러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기조로 내세운 문화융성을 총괄하는 문체부가 되레 문화 탄압을 주도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최순실 씨가 K스포츠재단에 나랏돈을 빼돌리려고 했으나 4급 서기관이 이를 번번이 막아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은 뜻밖의 소득이다. 정준희 서기관이 압박과 회유에도 차관 및 국장의 부당한 지시를 10여 차례 거부해 끝내 소신을 관철했다는 것이다. 고위직 가운데 정 서기관처럼 올곧은 신념의 공무원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 문체부 조직이 이렇듯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