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문화부장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관련한 뉴스가 수시로 나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권(大權) 후보들의 지지율이 발표된다.
이런 정치의 계절에 정치가 싫다는 말이 가당한 말인가. 그럼에도 요즘 마주치는 적지 않은 이들이 의외로 최 씨의 국정 농단이나 “누가 지지율 1위래” 하는 말에 손사래를 친다. 술맛 떨어지게 왜 그러냐고, 쯧쯧쯧.
동아일보는 6일자에 기획 시리즈 ‘외환위기 20년, 기회의 문 넓히자’ 중 금 모으기 운동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9%는 ‘경제위기가 다시 닥쳐도 금 모으기와 같은 위기 극복 운동에 동참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모를 일이다. 국가와 민족의 위기에 헌신적으로 응답해온 우리 국민의 정서를 감안하면 충격적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다리가 끊어진 것에 대한 좌절감이 큰 원인일 수 있다. 5포, 7포를 넘어 N포까지 가는 젊은 분노도 빠질 수 없다.
응답자들의 답변을 조금 더 보자. 그러면 국민의 ‘변심(變心)’이 신뢰의 부재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는 답이 2.7%에 그친 것은 그렇다고 치자. 국정 농단을 추상같은 기개로 세워야 할 법원 검찰 등 사법부 수치가 6.1%였다. 심지어 청문회를 통해 증인들을 추궁하고 있는 국회를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꼽은 응답도 3.3%에 불과했다.
같은 대통령제를 하면서도 미국과 우리 현실은 왜 이렇게 달라야 하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 최고 권력자에서 시민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뒷모습에 박수를 치고 싶다.
“(드라마) ‘도깨비’ 보자. ‘기승전’으로 시작해 최순실로 끝나는 뉴스가 지겹다면서 왜 집에 오면 꼭 뉴스를 봐? ○○○는 이래서 싫고, △△△는 저래서 얼굴도 보기 싫다며….” “뉴스 보면 화가 나지. 유력하다는 정치인 얼굴 나오면 더 싫고. 그래도 봐.”
말이 되나?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귀를 닫을 수는 없고, 이런 대화가 불가피할 때 싫다는 감정은 감추면 된다는 설명이다.
촛불은 새로운 정치의 현장이고, 광장은 그 촛불로 매주 뜨겁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은 기고에서 ‘대통령이 무너뜨린 국격(國格), 국민이 쌓아올렸다’는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야말로 최근 본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표현했다.
맞다. 하지만 촛불의 어둠 속에는 정치, 특히 정치 지도자의 일그러진 모습에 배신당한 많은 이들도 있다. 촛불이 상징하는 새 정치는 국민들이 느끼는 그 끝없는 배신감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할지 모른다.
중국의 춘추(春秋)시대에 공자(孔子)가 여러 나라를 순방하던 중 초(楚)나라의 섭공이 다스리는 지역에 도착했다. 그가 공자에게 자신의 지역을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릴 수 있는지를 묻자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고 답했다. “(정치는)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찾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