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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양승함]한국적 제3의 길

입력 | 2017-01-10 03:00:00

새해에도 계속되는 대립 상황, 진보 보수의 이념 갈등에 소득 불균형 등 양극화 심화
갈등 조정해야 할 정치가 되레 조장하고 증폭시켜
공생-협치-공정의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 절실… 실사구시 제3의 길 모색해야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해에도 촛불시위가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맞불시위도 함께 열리는 등 대립 상황이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다. 특별검사가 대통령 비리를 조사하고 헌법재판소가 법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심판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은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이든 거리로 뛰쳐나가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법적 제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는 데에는 사회적 균열구조가 그만큼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균열구조 첨예화는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이 상호 배제의 분열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침체의 장기화와 더불어 소득 불균형 구조가 한층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과 같이 사회계층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사회적 균열구조를 대화와 협의를 통해 민주적이고 다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장하고 증폭시킴으로써 정치권력 획득의 수단으로 정략적 이용을 해왔다. 그 결과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마저도 대립적 균열구조를 형성하여 상호 배타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갈라지고 찢어진 사회를 봉합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 과제이며 이것은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4·13총선에서 나타난 민심과 새해에도 타고 있는 촛불 민심의 진정한 시대정신은 정치적 협치, 경제적 공생, 사회적 공정이다. 협치는 여야 간의 대화와 협상 그리고 국민 협의의 거버넌스 구조를 의미하며, 공생은 소득의 양극화 극복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의미하고, 공정은 노력의 대가가 실현되는 도덕적 정의사회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시대정신의 구현은 구태의연한 분열과 배제의 정치로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한국적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국적 제3의 길은 이념적 양극화와 정치 사회적 균열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과격한 이념적 동원 구조가 승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후진적 배제의 정치 패러다임에 집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의 좌클릭이었으나 취임 후 공약을 저버리고 산업화 시대의 국가주의에 천착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불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강경 보수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격 진보 역시 이미 쇠퇴의 길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격하고 경직된 이념적 교리에서 벗어나 민생 중심의 실사구시(實事求是)가 필요한 것이다.

 ‘제3의 길’은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가 ‘제3의 길’이라는 책에서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좌파 노선을 주장했고,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현실 정치에 적용해 유명해졌다. ‘제3의 길’은 현대 자유주의, 온정적 보수주의, 근대화된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이념적 전통을 융합한 것으로서 국가마다 다르게 발전했다. 독일의 슈뢰더와 프랑스의 조스팽 등 유럽의 신중도파 정치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손을 내밀기보다는 손을 올리게 하는’ 복지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새해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정당체제는 4당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계 개편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당 간의 이합집산이나, 최소한 선거연대 등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정계 개편이 정략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이념과 정책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정략적 합종연횡에 대해서는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대체로 보수, 중도보수, 중도진보, 진보의 현재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한국적 제3의 길이 등장하여 좌우의 극단적 대립을 완충시킬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고 있다. 국민 다수의 시대정신을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대변할 ‘제3의 길’ 세력화가 정계 개편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58개의 그리스 도시국가를 비교 분석하면서 중간층이 다수가 되어 부자와 빈자 간의 균형을 잡는 국가가 안정적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