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탈출! 인구절벽/ 사라지는 학교들]<1> 810개校 문닫은 초고령 전남 전국 3686곳 폐교… 전남 810곳 고령화 시대 곳곳서 요양원 변신
5일 전남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 고금요양원에서 만난 정모 할머니(83)는 물기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예전에는 학교였던 요양원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정 할머니가 입소해 있는 고금요양원은 2000년까지만 해도 고금초등학교 가교분교였다. 그러나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폐교됐고, 2005년 완도군이 1억여 원에 매입해 고금요양원으로 변모시켰다. 완도의 또 다른 요양원인 청애요양원 역시 예전에는 군의초등학교 황진분교였다.
이심국 고금요양원장은 “2005년만 해도 우리가 전남지역에서 폐교를 요양원으로 전환한 첫 사례였는데 지금은 도내에만 폐교가 요양원이 된 곳이 십수 곳”이라고 말했다. 전남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저출산 고령화의 미래 대한민국을 경험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0.5%로 전국 최초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1월 현재 전국의 폐교 수는 3686개에 이른다. 과거에는 주로 초등학교의 분교가 폐교됐지만 최근에는 초등학교 본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 줄줄이 폐교되고 있다. 전남의 오늘은 대한민국의 가까운 미래다.
● 900명이던 전교생 이젠 25명… 전남 초중고 40%가 폐교 위기
아이들 사라진 초등교, 노인요양원으로 변신 한국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의 파고를 맞은 곳은 전남이다. 5일 전남 완도군에 있는 고금요양원에서 생일잔치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요양사들의 도움을 받아 춤을 추고 있다(아래 사진). 고금요양원이 고금초등학교 분교였던 1997년 5월 같은 장소에서는 1학년 1반 학생들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정화숙 씨 제공·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심국 고금요양원장은 “처음 개원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어르신이 엄청 늘었다”며 “과거에는 장흥이나 구례 지역 어르신도 계셨는데 이제는 완도 지역 어르신만으로도 대기 기간이 길어 타 지역 어르신은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완도 지역 노인들은 매년 수십 명씩 타 지역 요양병원으로 나가는 실정이라고 했다.
○ 아이들 사라진 폐교엔 요양원 노인들
요양원 차량은 마치 유치원 셔틀버스처럼 매일 아침 완도 곳곳을 돌며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태운다. 등원을 하면 유치원처럼 ‘러브반’ ‘스마일반’ ‘해피반’ ‘땡큐반’ 등 4개 반이 있어 각 반을 이끄는 요양보호사가 8, 9명씩 꾸려진 그룹과 활동한다. 이 시설의 정원은 30명이지만 인기가 높아 33명이 ‘통학’하고 있었다. 대기자도 수십 명이라고 했다.
1977년 고금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순경 고금요양원 요양보호사(52)는 “우리 때만 해도 한 학년에 최소 2개 반이 있었고 한 반 학생이 60명씩은 됐는데 언제 이렇게 아이들이 사라졌나 모르겠다”며 “지금은 가교리를 통틀어도 초등학생이 채 10명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20년 전만 해도 전남도 역시 지금의 다른 지역처럼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뼈저리게 느끼진 못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1990년 전남에는 15세 미만 청소년 인구가 65세 이상 노인보다 3배나 많았다. 2005년까지 노인보다 청소년이 더 많았다. 그러나 2010년 마침내 노인 인구가 청소년 인구를 넘어섰고 인구가 역전되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학교가 폐교됐다.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청소년 인구는 더욱 줄었다. 2015년 현재 전남의 노인 인구는 15세 미만 인구의 1.6배에 달한다.
800개가 넘는 학교가 폐교된 뒤 현재 전남도에는 894개의 학교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마저 상당수는 폐교 위기에 놓였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는 지방의 통폐합 대상학교 기준을 60명으로 보는데 전남도 학교 10곳 중 4곳이 전교생 60명 이하 학교”라며 “교육부 기준대로 폐교하면 지방엔 살아남을 학교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 이웃 학교로 순회수업 가는 교사들
전남 장흥군 용산면 용산중학교는 저출산 고령화시대 교육 사정을 보여주는 학교다. 1971년 개교한 용산중은 한때 전교생이 9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25명이다. 1∼3학년이 각각 7명, 5명, 13명인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현 중3이 다음 달 졸업하면 학교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찾아간 이 학교의 박지현 교무부장(52·여)은 “학교를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아이들이 정말 없다”며 “15년 전에 근무할 때는 한 반 33명에 한 학년에 2, 3개 반은 됐는데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거대한 학교 건물을 25명의 학생과 8명의 교사가 쓰다 보니 건물 청소 등 관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도시 지역처럼 학교 건물을 따뜻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 역시 좀처럼 힘들어 보였다. 각 교실에는 남아도는 책걸상이 수북이 쌓여 있고 음악실에는 학생 수보다 훨씬 많은 악기가 쌓여 있었다.
하드웨어보다 더 큰 고민은 교육 여건이다. 아이들이 적으니 교사를 많이 둘 수 없어 미술, 도덕 등 비주요 과목은 다른 학교 교사가 돌아가며 ‘순회교육’을 하는 상황이다. 이 학교 음악 및 기술·가정 교사 역시 다른 학교로 순회교육을 간다고 했다. 체육수업을 해도 축구팀 구성조차 힘든 상황이다. 교장과 남교사, 원어민 교사까지 모두 뛰어야 겨우 인원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용산중에는 교감도 없다. 박 교무부장은 “보통 학교에서 30∼40명이 나눠 하는 공문 처리 등 행정을 8명의 교사가 나눠 하다 보니 업무가 정말 많다”며 “일주일에 3일은 오후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교사 절반이 비좁은 관사에서 산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은 특별 간식으로 치킨을 시켜 먹었다. 치킨 배달원은 70대 할아버지였다. 박 교무부장은 “여기서 저 정도 나이면 어르신들한테 ‘젊은 것’ 소리를 듣는다”며 “대한민국의 고령화가 진행되면 전체적으로 비슷한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완도·장흥=임우선 imsun@donga.com·노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