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한국의 출입국관리법 제17조에는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 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이 아무리 원해도 어떤 시위에도 참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어기면 당국자는 해당 외국인에게 시위 참여 중지를 명령할 수 있고, 그만두지 않으면 추방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법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법률(안) 입법예고안에는 다음과 같은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가진 외국인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자에 대하여 주민투표권을 부여함에 따라 모든 외국인에 대하여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규정을 정비함.’ 저는 영주권이 있는 외국인입니다. 따라서 시군구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격이 있습니다(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는 귀화한 사람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투표는 되는데 정치 활동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투표 자체도 정치 활동의 한 종류 아니겠습니까.
제가 다른 외국인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노조에 가입하면 어떨까요. 그것 역시 가능합니다.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모든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와 똑같이 노동조합법에 규정된 모든 권리를 누립니다.
사실 출입국관리법에서 금지하는 제17조에 따른 정치 활동의 전형적인 예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알아보려고 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냈습니다. 받은 결정내역 서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아무도 출입국관리법 제17조에 따른 처분을 받은 경우가 없습니다. 2015년에 추방된 재미교포 신은미 씨도 제17조에 따라 처리된 게 아니고 제11조 위반(즉, 북한 정권을 칭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기)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2009년 네팔인 미누 씨는 여러 시위에 참여한 후 본국으로 퇴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의 강제퇴거명령에는 미누 씨의 정치 활동이 나열돼 있지만 추방된 이유는 미등록 체류로 나옵니다. 제17조는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치 활동을 이유로 외국인을 탄압하는 나라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기고문을 쓰는 것도 과연 정치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설마 아니겠죠?
하여간 정부가 묵인해주는 정치 활동이 이따금 보입니다. 국내 외국인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주장을 하거나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을 옹호하는 기사를 쓰거나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경우에 당국자는 눈감아줍니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홍보하는 홈페이지에서는 독도에 대한 글짓기 대회가 진행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부 정책과 합치될 때에만 외국인들의 정치 활동을 못 본 체하는 것은 별로 합리적이지 않은 듯합니다. 내국인과 외국인 구분 없이 발언의 자유와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조금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