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평론가
하지만 ‘지한파 구로다’도 한국문화, 음식, 비빔밥은 정확히 몰랐다. 그는 비빔밥을 두고 여러 가지 나물들로 예쁜 모양새(양의 머리)를 만든 다음, 먹기 전 마구 뒤섞어, 엉망진창(개고기)으로 만든다고 했다. 왜 먹기 전 예쁜 모양새를 다 허물어뜨리고 비비는지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비빔밥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백남준은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세계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빔밥은 밥과 여러 채소, 각종 장이 섞여 있다. 멀티미디어 음식이다. 비빔밥은 부엌에서 완성돼 나오는 음식이 아니다. 비빔밥은 먹는 이가 완성하는 음식이다. 여러 재료를 내놓으면 먹는 이가 직접 섞어서 먹는다. 먹는 이가 참여해서 완성하는 음식이다. 비빔밥이 개방, 공유, 참여의 웹 2.0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구로다는 ‘닫힌 가마메시(솥밥)의 눈’으로 ‘열린 비빔밥’을 봤다. 그가 악의적으로 비빔밥을 폄하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의 ‘비빔밥 양두구육’ 이야기는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빔밥의 밥알이 깨진다고 젓가락으로 휘적거리는 이들도 있다. 잘못이다.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쓱쓱 비벼야 제맛이 난다. 그릇 안에서 밥 알갱이, 나물, 각종 장이 뒤섞여야 한다. 여러 식재료가 마찰, 충돌하고 마침내는 융합하여 복잡한 맛을 낼 때 제대로 된 비빔밥이 된다. 섞임, 충돌, 융합이 비빔밥의 핵심이다.
백남준은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라는 수필도 남겼다. “하나의 그릇 안에서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것이 백남준의 예술”이라고 했다. 이른바 비빔밥 예술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일본은 가방형 문화, 한국은 보자기형 문화”라고 했다. 가방은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물건을 넣어야 한다. 보자기는 웬만한 물건은 다 받아들인다. 보자기는 어떤 모양의 물건이든 담을 수 있다. 보자기는 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양의 꾸러미를 가진다. 비빔밥도 그러하다. 열 명이 비비면 열 종류의 비빔밥이 나온다.
최근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인터뷰를 했다. 그가 비빔밥에 대해 “비빔밥에 관한 한 남과 북은 비슷하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비빔밥”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평양 채소비빔밥이 명품이라고 했다. 태 전 공사가 평양에서 먹었던 비빔밥이 이규경의 평양 채소비빔밥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