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한 측도 설치된 데 놀라 정부, 예측 가능한 일이었지만 근본 대비책 없고 관리도 실패 황교안의 소극적 권한대행 인식 바꾸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못해
송평인 논설위원
일개 구청장이 트집 잡힐 일을 해서 한일 관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걸 보고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비슷한 일이 부산이나 제주의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벌어질 때를 대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한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새로 소녀상이 설치됐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도 소녀상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은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3월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광장에 소녀상이 처음 세워졌다. 당시도 시민단체들이 그 소녀상을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하겠다고 해서 부산시가 간신히 달래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겼다. 지난해 12월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려는 시도가 다시 있었다. 부산시가 인근 정발장군공원 쪽으로 설치를 유도하던 중에 시민단체들이 기습적으로 설치했다.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당사자들조차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행위예술의 차원에서 설치를 시도한 것인데 정말 설치되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는 부산시나 동구에 전화로 사정이나 알아보려 했지 근거가 남는 어떤 협조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능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는 발 빠른 정부다.
서울 일본대사관 소녀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상의 조항은 단지 노력한다는 것이지 철거를 약속한 것은 아니라는 우리 정부의 해석을 따르고 싶다. 그러나 그 조항은 최소한 같은 사안으로 갈등이 확산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국가, 광역단체, 기초단체로 나눠 관할하는 도로 관리의 대(大)원칙을 고칠 수 없었다면 아예 그런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한 셈이다. 그런 약속 없이 위안부 합의가 불가능했다면 아예 합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상황을 관리하지 못한 궁극적 책임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있다. 신문사에 앉아서도 부산에서 소녀상 설치와 강제 철거 소식이 들려왔을 때 심상치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단순히 총리였다고 하더라도 꼼꼼히 챙겼어야 할 사안이다. 설치 허가권이 중앙정부가 아니라 부산 동구에 있지만 재설치까지 이틀간의 여유가 있었고 동구청장이 집권여당 소속이니까 어떻게든 설득하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황 권한대행의 자기 인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고건 권한대행은 곧 돌아올 대통령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소극적인 국정운영이 타당했지만 황 권한대행은 사실상 정권교체기를 맡고 있고 기간도 상대적으로 길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흔들기도 우려스럽지만 공정한 대선 관리도 해야 한다. 부산 소녀상 설치는 현상 유지도 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을 대신한다는 생각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현상 유지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