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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살리자” 獨오케스트라 체험에 원어민 영어수업도

입력 | 2017-01-12 03:00:00

[2017 탈출! 인구절벽/ 사라지는 학교들]<3>전남 작은 학교들 “전학 오게 만들자” 공교육 분투




《 “교실 앞에 있는 칠판요? 안 쓴 지 몇 년은 된 것 같은데요. 항상 아이들이랑 같은 책상 놓고 마주 앉아 공부하니까 칠판 쓸 일이 없어요. 강의식 수업은 자연스레 사라졌죠.”(박병보 학산초등학교 교사) 6일 전남 영암군 학산초의 1학년 1반 교실. 교탁은 창문 쪽으로 치워져 있고, 책걸상 4쌍이 서로 마주 본 채 교실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학산초 1학년 학생은 3명뿐이다. 모든 수업은 마치 모둠활동을 하듯, 학생 셋과 교사가 마주 보고 앉아 공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학교 교사들은 교탁 대신 아이들과 마주 앉은 지 이미 오래. 교사들은 아이들 눈앞에서 한 명 한 명이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고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개인 맞춤형 수업을 진행했다. 3 대 1 과외수업인 셈이다. 》



  학산초 김혜경 교사(24·여)는 “학생 수가 적으니 아이들 행동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며 “모든 학생을 평균 이상 따라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초학력 미달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업 발표도 한두 명만 손을 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에게 고르게 기회가 돌아간다고 했다.


○ ‘작은 학교’ 수준 높이자 학생 늘어

 

6일 전교생이 34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인 전남 영암 학산초 학생들이 학교가 준비한 무료 영어캠프에 참가해 원어민 영어교사와 영어로 대화하고 있다. 영암=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학산초는 1926년 개교 후 한때 전교생이 16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34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다. 교육부의 통폐합 대상 학교(기준 60명 이하)에 해당하는 학산초 같은 작은 학교는 전남 지역 학교 894곳 중 363곳(41%)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전남도교육청은 지자체와 협업해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며 학생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예산 확보 △장거리 통학이 가능하도록 ‘통학버스’ 도입 △해당 학구에 살지 않는 학생도 작은 학교로 전학갈 수 있게 ‘공동 학구제’ 운영 △단위 학교에 ‘컨설팅 지원단’ 파견 등이 그 예다. ‘작은 학교에서도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니 아이들을 많이 보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교육당국도 소규모 학교의 교육 수준을 높여주면 저출산 풍토를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교육의 기능이 약화되고 사교육의 기능이 커진 도시 지역의 교육 환경에 비해 작은 학교에서는 공교육이 적극적으로 살아 움직였다. 어차피 아이들이 너무 적어 사교육 시장이 형성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한 모든 것은 학교가 해결하고 있다. 원어민 교사의 영어 수업부터 과학실험, 피아노, 컴퓨터, 미술에 이르기까지 교과 수업부터 예체능 교육이 모두 학교 안에서 가능하다. 박병보 교사는 “도시 학교에선 교사가 신경을 덜 써도 사교육으로 교육이 돌아가지만 여기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교사가 다 챙겨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방학인 6일에도 대부분 학교에 나와 있었다.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영어캠프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원어민 교사의 질문을 이해하고 간단한 문장과 단어로 답을 했다. 박 교사는 “학기 중에도 주 2회 영어 원어민 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며 “정규 수업과 방과후 활동은 물론이고 방학 캠프도 모두 무료”라고 말했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매월 수십만 원을 지불하며 이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수업을 들어야 했겠지만 학산초 아이들은 무료로, 게다가 소수정예로 즐기고 있었다.

 

미니학교의 ‘글로벌 교육’ 지난해 10월 전남 순천시 외서초등학교 3∼6학년생 21명이 여수시 소호초 학생들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 참가해 연주하고 있다. 외서초 제공

작은 학교는 아이들이 평소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도 알차게 구성해 제공하고 있었다. 학산초 4∼6학년 아이들은 곧 단체로 스키캠프를 간다. 무료다. 전남 순천시의 외서초는 전교생이 30명인 작은 학교지만, 지난해 10월 3∼6학년 재학생 21명 전원이 독일 베를린 국제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 참가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순천시, 수자원공사, 도교육청이 필요경비를 지원했다. 이종호 외서초 교무부장은 “2015년 말 전교생이 22명으로 줄어 위기에 처했지만 독일 체험학습 소식이 알려지자 10명이 한꺼번에 전학을 왔다”며 “올해도 학생들이 독일 교수들에게 악기 레슨을 받고, 격년으로 독일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5일 찾아간 전남 장흥용산중은 학생들에게 해외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장흥용산중은 중국 저장(浙江) 성 원저우(溫州) 시 핑양(平陽) 현 실험중과 자매결연을 하고 매년 전교생 25명을 중국에 무료로 보내준다. 현재 중 2, 3학년생들은 이미 두 번이나 중국에 다녀왔다. 이 학교 고가은 양(15)은 “중국인 친구와 큐큐(중국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다”며 “중국에 가서 언어와 문화 교류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지현 장흥용산중 교무부장(52·여)은 “이런 사업은 도교육청이 무지개학교(미래형 혁신학교)에 지원하는 예산 3000만 원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며 “학교가 교육청에서 공모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학교 발전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출산 시대에 맞는 학습 방법 필요

 이처럼 학생 수가 줄면서 교실 환경과 수업 방식은 크게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저출산 시대 교실에 맞는 교수법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고 있는 건 문제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사들은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의 수업이 지나치게 이론 중심이고 △소규모 학교의 학급 설계·경영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의 교대에서는 예비 교사들에게 여전히 초등학교의 한 학급이 30명 정도라고 가정하고 강의식 교수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런 교육 방식은 소규모 학교에서는 이론으로만 존재할 뿐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2015년 3월 영암 학산초에 신규 교사로 임용된 김혜경 교사는 “교대에서 공부하면서 배웠던 모형들을 작은 학교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복식학급에 맞춰 가르치기 어렵다고도 했다.

 복식학급은 두 학년을 한 반으로 합친 학급을 말한다. 복식학급을 만드는 기준은 인접한 두 학년의 인원이 총 7명이 되지 않을 때다. 현재는 농촌 지역에 많지만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 도시에서도 생겨날 수 있고 그 수가 점점 늘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교대에서는 예비 교사들에게 이 같은 복식학급 교수법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수업의 질과 형식이 학생의 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국내 교육계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학급당 학생 수가 빠르게 줄고 있는 만큼 교사들이 최적의 교수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지원 zone@donga.com·임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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