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3주간 보던 파란 하늘 대신 뿌연 미세먼지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귀국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공항 안에 있는 한식당에 가서 밥부터 시켰다. 해외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칼칼하고 매운 양념의 비빔냉면을 한 그릇 주문하고 앉아 있자 종업원이 컵과 물을 내왔다. 그 당연한 모습에 나는 빙그레 웃음이 났다. 여행지의 모든 식당은 물값을 따로, 그것도 아주 비싸게 받았기 때문이다. 빈 컵에 물을 따라 시원하게 원샷을 하는데 심지어 맹물이 아닌 보리차라는 사실에 감동은 두 배가 되었다. “캬, 이 맛이지!” 하며 단숨에 물 한 잔을 더 비워냈다. ‘이 맛있는 물 한 병을, 아니 몇 병이고 공짜로 내주는 곳에서 살았었구나’ 하며 뜨내기손님을 받는 공항 식당의 그 맛없는 냉면을 참 맛있게도 먹어 치웠다. 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식이라면 무엇이든 다 꿀맛이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출근을 하고 평범한 날들을 보내다가 여느 때처럼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게 된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일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것이 서럽고 맥이 빠졌을 텐데, 문득 여행지에서의 식사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희한하게 기분이 좋았다. 몇 주 전 어느 날 낯선 도시의 공원 벤치에 앉아 맛없고 비싼 샌드위치와 물병을 손에 쥐고 끼니를 해결하던 것이 참 행복하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이게 고급스러운 브런치와 다를 게 없다’며 우적우적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여행이란 무료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긍정적인 태도를 얻으려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텔방의 바스락거리고 푹신한 침구, 위대한 예술가들의 어마어마한 작품들, 이국적이고 들뜬 거리의 분위기들, 색다르고 놀라운 맛의 음식들 모두 여행의 큰 매력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즐긴 그 끝에는 결국 내가 딛고 서 있던 삶의 터전이 얼마나 값지고 멋진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 물을 마신 것처럼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그 진부한 이치를 깨닫고 오는 것이다.
분명히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이 지루한 날들에서 해방되기를, 새로운 곳에서의 짜릿함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벗어나기를 바라는 곳, 즉 돌아올 곳이 있기에 더욱 떠나고 싶어진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배웠다. 당분간 이 여행의 기운으로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 본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