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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최순실 靑출입이 안보 사안이냐” 입닫은 증인 질타

입력 | 2017-01-13 03:00:00

[헌재 탄핵심판]헌재 ‘朴대통령 지연작전’에 강공




이영선 “휴대전화 닦아 전달하는 게 습관”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의 증인으로 채택된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위쪽 사진). 최순실 씨의 개인비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행정관은 2014년 11월 서울 강남의 최순실 씨의 의상실에서 휴대전화를 셔츠에 닦아 최 씨에게 건네는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아래쪽 사진). 사진공동취재단·TV조선 화면 캡처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이 열린 12일 증인으로 출석한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39)은 간단한 질문에도 답변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했다. 헌재 재판관들이 돌아가면서 이 행정관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를 꾸짖을 정도였다.

 이 행정관은 당초 5일 증인 출석을 요구받았지만 한 차례 출석을 미룬 뒤 이날 심판정에 섰다. 박 대통령의 경호원 출신으로 사실상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개인비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의 증인 불출석에 이어 이 행정관마저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박 대통령 측이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헌재도 박 대통령 측에 탄핵 결정 지연 의도가 있다고 보고 강경 대응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 “말 못한다” 반복에 재판관들 돌아가며 질책

 이 행정관은 이날 증인신문에서 ‘보안 사항’이라거나 ‘직무 관련’이라는 이유를 대며 기본적인 사실을 묻는 질문에도 답변을 회피했다. 주심 강일원 재판관이 “최 씨가 청와대 관저에 출입한 적 있느냐”고 묻자 이 행정관은 “보안 사항이라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재판관들은 답답함을 드러내며 이 행정관을 다그쳤다.

 “계속 답을 안 하는 이유가 본인의 형사책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인가?”(박한철 소장)

 “최 씨의 청와대 출입 여부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인가. 본인 범죄와 관련이 없다면 증언해야 한다.”(강 재판관)

 반면 이 행정관은 박 대통령이 의상을 구입한 경위에 대해서는 상세한 답변을 했다. 그는 “박 대통령께서 서류봉투를 건네줘 (의상실에) 몇 차례 전달한 적이 있다. 만졌을 때 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서 “의상 대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던 자신의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최 씨가 자기 지갑에서 꺼낸 현금으로 박 대통령의 옷값을 치르는 동영상이 공개돼 박 대통령이 최 씨에게서 ‘옷값 대납’ 뇌물을 받았다는 논란이 일자 말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강 재판관은 이 행정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최 씨의 관저 출입은 기밀인데, 의상실에 돈 봉투 건넨 건 기밀이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이날 증인신문에서는 이 행정관이 검찰 압수수색 당시 자신의 차명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박 대통령의 전화번호(010-9973-××××)를 삭제한 사실도 공개됐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이 행정관의 휴대전화 3대를 압수해 잠금장치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자 해당 번호를 다급하게 지운 것이다. 이 행정관은 삭제 경위에 대해 “긴장을 해 손을 덜덜 떨고 있다가 실수로 지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행정관은 3년 전 최 씨의 의상실에서 휴대전화 액정화면을 셔츠에 닦아 최 씨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과 관련해 국회 소추인단 측 변호인이 “최순실 씨에게 왜 그렇게 공손히 대했느냐”고 묻자 “저보다 연장자이고 경호 전공자로서 몸에 밴 습관”이라고 답했다.

○ “박 대통령, 버틸수록 손해”…헌재, 강경 기조

 헌재는 박 대통령 측이 핵심 증인들을 불출석시키거나 소극적으로 증언하게 해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헌재는 증인 출석을 거부하고 잠적한 이재만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을 찾기 위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두 사람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시간 끌기’가 이어지자 헌재도 “불출석 증인들을 강제 구인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경하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 강 재판관은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며 본인(박 대통령)이 결백하다면 적극 소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이 별다른 주장을 하지 않아도 일단 무죄로 추정하는 형사재판과 달리 탄핵심판에서 불성실한 해명은 박 대통령 본인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헌재는 박 대통령 측 증인들이 증언을 하지 않으면 검찰이 제출한 각종 진술 조서를 탄핵 결정에 참고할 방침이다. 박 대통령이 최 씨, 안 전 수석 등과 공모관계임을 보여주는 자료가 대거 포함된 검찰 수사기록이 탄핵 심판 심리에 증거로 쓰이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할 수 있다. 헌재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 측이 계속 ‘시간 끌기’를 할 경우 재판관들을 자극해 점점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배석준 eulius@donga.com·전주영·신광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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