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세상 ― 권선옥(1951∼ )
모처럼 서울 갔다 돌아오는 길,
다리 아프게 돌아다니면서
집 구경만 하고 결국 그냥 돌아왔다
이십 년 넘게 아내를 직장생활을 시키고서도
번듯한 서울집 한 채 살 수 없는 나의 형편,
잠이 든 아들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능한 아비의 자식이 가엾어진다
그놈의 서울만 갔다 오면 마음이 착잡하다
내가 잘못 살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 거실 바닥에 떨어지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청개구리 한 마리
옹색한 내 집에 먹을 것을 찾아 왔구나
휴지에 싸서 창밖으로 던지니 몸부림친다
가볍고 부드러운 휴지를 떼어내지 못하면서도
용케 세상을 사는구나
세상에는 좋은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무척 많다. 다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멋진 시인의 좋은 시, 이런 작품을 찾으면 기쁘다. 광고판에 올라가지 않았어도 기억에 오래 남는 시, ‘적막한 세상’도 그런 시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는 긴긴 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잘 모르는 지리, 잘 모르는 동네를 더듬으며 아들의 살 집을 알아보았지만, 가진 재산으로는 속수무책. 시인은 한 일 없이 집에 돌아오고 만다. 집값이 얼마나 비싼가. 게다가 서울의 집이라는데 그게 쉽게 구해질 리 없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부모의 마음은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날 밤 시인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만 썼을 것이다.
청개구리처럼 작아진 이 아버지를 도닥여 주는 것은 우리 마음을 도닥이는 것과 같다. 이 축 처진 어깨는 내 아버지의 어깨이며, 미래의 내 어깨일 것이다. 평생 착하고 다정하게 산 것은 죄가 아니다. 남을 밟지 않고 속이지 않은 것도 죄가 아니다. 돈이 적은 것 역시 죄가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결코 잘못 살지 않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