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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베트남에 한국남자像이 세워졌다면

입력 | 2017-01-13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책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에서 “한국은 강대국이 절대 아니다. 몸을 낮추고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한일 관계에 대해 ‘거망관리(遽忘觀理·분노를 접고 사리를 따진다)’를 주문한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북아의 안보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격변기일수록 철저하게 국익에 기반을 두고 실리 위주로 사고해야 한다.

강대국커녕 중견국도 아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운명 탓에 대외적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만 경제적으로도 해외시장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민총소득(GNI)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독일에 이어 2위, 수입 비중도 멕시코에 이어 2위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 매출의 80∼90%가 해외에서 일어난다. 세계 시장의 작은 파문에도 한국 경제가 출렁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인들이 메이드인코리아와 한국 문화를 좋아하도록 만든 것은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의 앵글에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국제적 시각을 갖지 못하는, 난시를 넘어 스스로를 강대국이라 착각하는 착시까지 있다.

 적도 친구도 없는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선 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존립이 위험해진다. 조선시대 조정은 국제관계 동향에 눈과 귀를 닫고 살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결국 망한 것 아닌가. 1905년 미일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으로 조선과 필리핀을 물건처럼 주고받는 것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들이 위안부가 된 부끄러운 역사도 우선은 우리가 약하고 못나서였기 때문 아닌가.

 최 전 장관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강대국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중견국가도 아니다. 선진국 눈에는 ‘벼락부자가 된 촌놈’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직도 ‘남쪽이냐 북쪽이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을 안다 해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단한 나라 정도이지 존경심을 보이는 정도는 아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나라도 존경을 받으려면 겸손을 바탕으로 교양과 품격, 남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돈 문제로만 생각하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어 하는 일본은 자격이 없다.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 전쟁을 치른 나라다. 우리도 참전했다. 베트남 정치지도자들의 일관된 외교 전략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치지도자들 문제이지 국민들과는 상관없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베트남 시민들이 한국대사관 앞에 베트남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버린 한국 남자들을 규탄하는 조각상을 세웠다면 오늘날의 양국 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외교전략은 미래 향해야

 한국인으로서 위안부 소녀상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지켜주자는 세계인들의 약속(빈 협약)에까지 눈감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운 시민단체는 세계인들에게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부터 국제사회의 룰을 지킨다는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 한다. ‘정부 간 약속(위안부 합의)도 지키지 못하는 한국은 믿지 못할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우리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