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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자리엔 새 건물… 안내표지판도 없어

입력 | 2017-01-14 03:00:00

점점 잊혀져가는 민주화 역사의 흔적




 서울에서 박종철 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하숙집이 있던 관악구 대학동, 그리고 서울대 교내 기념비 등이다.

 박 씨가 1987년 1월 형사들에게 붙잡혀 끌려나왔던 그 하숙집은 서울대생들이 지금도 많이 사는 대학동(당시 신림9동) ‘녹두거리’의 한 골목에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박 씨의 하숙집은 주택 2층이었는데, 1996년 이 주택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박 씨가 이곳에서 짧은 서울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인근에서 30년가량 산 주민들도 잘 몰랐다. 박 씨의 하숙집 주택을 1989년 사들인 뒤 건물을 신축한 김모 씨(58)는 “1, 2층에 작은 방이 서너 개 있었다”며 “박 씨는 2층에서 하숙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7년 전부터 인근에 살았다는 김모 씨(28)는 “박 씨가 이 동네에 살았는지 전혀 몰랐다”며 “역사에 남을 사람인데 작은 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신했다. 박 씨의 유품과 편지, 그리고 물고문이 자행된 5층 취조실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방에는 붉은 벽돌 너머로 욕조와 세면대, 샤워기 등이 그때 그 모습대로 있다. 책상과 침대도 마찬가지다. 세면대 위에는 박 씨의 사진과 꽃 한 송이가 올려져 있다. 한편에는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동기들이 “방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며 갖다 놓은 깃발도 있다. 평일에만 문을 여는 이곳엔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연간 방문객은 3000명 정도라고 한다.

 ‘민주열사 박종철의 비(碑)’는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중앙도서관 옆 얕은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다. 박 씨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흐른 지금 기념비에 의미를 부여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서울대생 김모 씨(27·여)는 “박종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권기범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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