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건설업은 생산 과정에서 다양한 협력을 필요로 한다. 아파트 한 동을 건축하기 위해 토공, 철근콘크리트 등 40여 개 종류의 공사가 필요하다. 건설업체 한 곳이 이러한 작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모두 보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건설업체들과 분업을 통해서 시설물을 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분업이 현재 발주자에서 원도급자로, 또다시 하도급자로 이어지는 수직적 종속적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간의 분업은 사인(私人) 간 계약의 원칙이 적용된다. 대등한 당사자 관계가 전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협상력 차이에 따른 대등하지 못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가 낙찰을 받은 원도급자가 하도급자에게 가격 부담을 떠넘기는 등 각종 불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우려가 있다. 실행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부실공사로 귀결되기도 한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좋은 품질의 생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어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현장에서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자를 발주자가 바로 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로 부실 건설업체를 솎아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이는 종합건설업자와 전문건설업자의 상생발전 모델이기도 하다. 종합건설업자는 주계약자로서 공사의 종합적인 계획·관리 및 조정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역량 있는 전문건설업자는 좋은 평판을 갖추면서 점점 해당 공종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수직적 종속적 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하도급 관련 부조리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계약에서 도입된 주계약자공동도급 제도는 300억 원 이상 공사에 적용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방식으로 발주된 공사는 전체의 1.5%인 133건에 그쳤다. 이는 제한적인 대상공사의 규모와 공종, 불합리한 구성원 수, 구성원 간의 지위 문제 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발주자도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최근 서울시와 일부 공기업이 주계약자 공동도급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윤리와 가치가 존중되고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건설현장 상생의 꽃인 주계약자 공동도급의 활성화로 건설업이 미래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신선한 생산체계를 가진 산업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