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산업부 차장
계산대를 없앤 매장 ‘아마존 고’ 얘기다. 들어갈 때 스마트폰을 개찰구에 갖다 대면 결제 준비는 끝이다. 그 뒤로는 원하는 상품을 그냥 들고 나오면 된다. 매장 안에서 물품을 자기 가방에 넣고 나와도 계산은 자동으로 처리된다. 아마존은 이 기술에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그냥 나가세요)’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기술의 확산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미국은 자국 일이라 그런지 분석과 전망에 좀 더 부지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글 같은 기업들이 수개월 내에 비슷한 기술을 완성해 유통기업들에 판매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연말이면 월마트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매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들이 고객을 구별한 뒤, 고객이 가방에 넣는 물품까지 인식하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세계 여러 자동차 기업은 물론이고 구글과 애플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대학 연구소들이 갖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여러 곳에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설치 비용마저 비싸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율주행에 적용된 센서들은 상용화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품산업 애널리스트인 필 렘퍼트 씨는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은 금전등록기 1대 가격보다 쌀 것이다. 도입의 관건은 비용이 아니라 유통기업 이사회 결단이다”라고 분석했다. 일자리 감소로 인한 노조나 소비자 반발이 변수라는 얘기다.
아마존 고는 계산원의 일자리가 사라진 디스토피아를 먼저 떠오르게 만든다. 소비자가 매장 직원 업무의 일부를 대신해 바코드를 스캔하던 ‘그림자 노동’의 시대보다 더 혹독한 일자리 감소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미식품상업노동조합(UFCW) 마크 페론 노조위원장은 아마존 고 개장 소식이 알려진 직후 “지역사회와 매장 계산원의 삶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탐욕스러운 결정”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에는 2015년 기준으로 340만 명의 계산원과 880만 명의 소매상이 있다. 이들은 미국 전체 일자리의 8.5%를 차지한다.
아마존 고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의 매장 계산원 종사자 수는 2013년 기준으로 39만 명에 이른다. 평균 근속 연수는 4.5년, 월급은 100만 원(중간 값), 여성이 62%를 차지한다.
새 패러다임 적응에 롯데나 신세계 같은 기업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지혜는 자동차를 무시하고 마차를 그냥 사용하자는 식이 아니라 운전을 잘하자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계산원을 상품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쇼핑 전문 도우미로 양성한다면 고객의 만족도까지 높이는 윈윈 전략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