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활자잔혹극’(루스 렌들·북스피어·2011년) 》
추리소설의 첫 문장치고는 꽤 자신만만하다. 범인은 물론이고 범행 동기까지 단숨에 밝혀 버린다. 이 문장을 통해 작가는 소설이 단순히 단서를 찾아 범인을 추리하는 유희 이상의 무언가가 되도록 하겠다는 야심을 공표한 셈이다.
소설은 이 문장 다음부터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죽였다’는 그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유니스 파치먼은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재능이 없었던 그는 결국 돌봐줄 사람 없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수 있는 정도의 문맹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만다.
문맹이라는 것은 그저 불편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이 읽고 쓸 줄 아는 세상에서 문맹은 약점이다. 소통하고 교류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힐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치먼은 완고하고 도덕관념이 희박한 중년 여성이 된다. 또 문맹이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늘 전전긍긍하며, 세상을 배척하게 됐다.
비극은 파치먼이 우연히 커버데일 가족의 하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싹튼다. 처음 몇 달간은 남에게 무관심하지만 집안일만큼은 억척스레 해내는 파치먼에게 만족했던 가족들은 점점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가 간직하던 단 하나의 비밀, 문맹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들키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단숨에 읽히지만, 모두 읽고 난 이후에는 긴 질문이 남는다. 계층적 차이, 혹은 지적 능력의 차이가 정말로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과연 파치먼은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악인이라면, 이 괴물을 낳은 것은 누구인가? “(추리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고찰하는 소설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실현된다. 긴 겨울밤이 지루할 때 펴들기 좋은 책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