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0여명 체류… ‘제2의 칼레’로 反난민 기류에 서유럽行 쉽지않아 브로커 밀입국 유혹-추방 공포에 18%는 난방없는 비공식 시설서 지내… 가디언 “또다른 범죄 온상 우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를 잊지 말라. 상어의 입속이 아닌 한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영하 16도 혹한이 닥친 지난주 동유럽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철도역. 때 묻은 건물 벽에 쓰인 낙서는 철도역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는 난민 1200여 명의 절규였다. 난민들은 눈이 녹아 질퍽해진 진흙 바닥 위에 빈 캔, 플라스틱 병, 각종 쓰레기로 작은 텐트를 짓고 추위를 피했다. 한파를 견디다 못해 온기를 느끼려 불에 태운 창문 조각과 쓰레기에서 지독한 유독가스가 피어올랐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14일 베오그라드 난민 은신처 현장을 소개하며 “제2의 칼레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칼레 난민촌은 난민이 무섭게 모여들며 범죄의 온상이 돼버려 지난해 10월 결국 철거됐다.
난민들은 강추위에 몸이 얼거나 어설프게 불을 피우다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고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 따르면 의료진이 돌본 환자의 절반가량은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이다. 안드레아 콘텐타 MSF 인도주의 담당자는 가디언에 “세르비아는 새로운 칼레가 되고 있다. 쓰레기통이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MSF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원을 합하면 7300여 명의 난민과 이민자가 세르비아에 머물고 있다고 추산한다. 82%는 난방이 되는 정부 시설에 입소했으나 나머지 1200여 명의 남성은 비공식 시설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이 중 300여 명은 어린 소년들이다. 칼레의 난민 규모(프랑스 정부 추산 6500명)를 이미 넘어섰다. 세르비아는 난민 처우가 좋지 않은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에 둘러싸여 있어 서유럽 국가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난민들에게 환승지 격이다. 최근 일부 유럽 국가가 강경한 이민정책을 펴자 난민정책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세르비아로 향하는 난민도 늘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공식 난민 캠프를 마련했지만 난민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버티려 한다고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밀입국을 돕는 브로커들이 돈벌이를 위해 난민들을 불법 은신처에 묶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페터르 판데르 아우에라르트 국제이주기구(IOM) 조정자는 “브로커들은 난민에게 ‘공식 캠프로 이동하면 유럽 국가에 진입할 수 없다’고 협박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난민은 불가리아나 마케도니아로 추방될까 봐 공식 캠프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불가리아는 난민 사이에서 악명 높은 국가다. 윌리엄 레이시 스윙 IOM 사무총장은 옵서버 기고에서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세계 리더들은 혹한에 얼어 죽어 가는 난민과 이민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