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기요시 기자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책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는 시미즈 기자가 ‘기타칸토(北關東) 연쇄 여아 유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다룬 논픽션이다. 그는 2007년 6월 취재 아이템을 찾아 미제 사건 목록을 뒤지던 중 일본 중부 도치기(회木)와 군마(群馬) 현에서 1979년부터 1996년까지 5건의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발견한다. 반경 10km 이내에서 4∼8세 여자아이가 죽거나 실종됐는데 대부분 휴일에 빠찡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시신은 강가에서 발견됐다.
범인이 잡힌 것은 1990년 아시카가(足利) 시에서 발생한 사건뿐이었다. 경찰은 이듬해 DNA 감정을 통해 스가야 도시카즈(菅家利和·당시 44세)를 체포했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검찰은 당시 ‘DNA 감정이 유력한 증거가 된 첫 사건’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연쇄 살인사건 중 하나임을 확신한 시미즈 기자는 스가야의 무죄 가능성에 대해 취재를 시작한다.
문제는 초기 단계여서 오류가 많던 DNA 감정을 과신한 경찰에 있었다. 또 이를 토대로 기소한 검찰과 증거로 인정하고 판결을 내린 법원에도 책임이 있었다. 결국 경찰, 검찰, 법원은 무죄가 확정된 스가야 앞에서 고개를 숙여 사죄해야 했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끈질기게 취재를 이어가 DNA가 일치하는 진범을 찾아낸 것. 그럼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같은 DNA 감정 방식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미즈 기자의 추측이다. 이미 사망한 사람이 무죄로 판명될 경우 일본 사법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책에는 일본 수사기관의 문제가 곳곳에서 언급된다. 무조건 자백을 이끌어 내려는 무리한 수사, 불리한 증거는 누락시키고 조직을 위해서라면 위법도 마다하지 않는 맹목성, 사건의 진상을 호도하는 교묘한 언론플레이…. 모두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 다음 피해자를 막겠다는 시미즈 기자의 집념이 결국 난관을 극복해낸다.
2013년 출간된 이 책은 ‘기자의 바이블’로 불리며 각종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6월 문고판으로 발행된 후에는 한 서점 직원의 아이디어로 제목도, 저자도 가려진 채 진열돼 ‘문고X’라고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이 직원은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표지를 가리고 “소설도 아니다. 500페이지가 넘어 기가 질리는 것도 안다. 하지만 꼭 읽어 달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 캠페인이 다른 서점으로 확산되며 문고본만 지금까지 18만 부가량이 팔렸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