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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보수를 보수라 말하지 못하는 현실

입력 | 2017-01-1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재명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조상 중엔 반석평이란 인물이 있다. 노비의 자식이었지만 글공부에 재주를 보이자 재상을 지낸 주인은 반석평을 아들 없는 부자인 반서린의 양자로 보냈다. 신분을 세탁한 반석평은 1507년 과거에 급제한 뒤 정2품 벼슬, 지금으로 따지면 장관급까지 오른다. 시골 소년임을 유독 강조하는 반 전 총장의 ‘흙수저 신화’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DNA인지 모른다.

 반석평이 지금도 회자되는 건 노비 출신 재상이어서만은 아니다. 반석평은 형조판서 시절 자신의 운명을 바꿔준 주인집 아들을 만난다. 주인집은 어느새 몰락해 있었다. 반석평은 중종에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관직을 박탈하고 주인집 아들에게 벼슬을 내려 달라고 간청한다. 신분을 속인 반석평은 처벌받아 마땅했지만 중종은 그의 신의에 감복해 그를 중용하고 주인집 아들에게도 벼슬을 내렸다.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다.

 자신을 불사르겠다고 나선 반 전 총장의 도전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야권은 그를 양지만 좇는 기회주의자로 몰아세운다. 조상에게서 신의를 배우라고 닦달할 기세다. 외교관이 정권에 충성하고, 정권이 그런 외교관을 중용한 걸 두고 ‘시혜(施惠)’로 보는 시각 자체가 편협함이다.

 그렇다고 반 전 총장이 들고나온 ‘정치 교체’가 미더운 건 아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쳐놓은 ‘반기문 대통령은 정권 교체가 아니다’라는 그물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국민의당과 김종인 손학규 김무성 등 ‘반(反)문재인 세력’을 개헌 연대로 묶어내려는 정치공학적 수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치 교체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등이 이미 써먹은 ‘철 지난 슬로건’이란 점에서 신선도도 떨어진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말도 틀리지 않다. 진보 정권이 두 차례, 보수 정권이 두 차례 집권하며 정권 교체를 해봤지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한국 사회는 갈가리 찢겼다. 그 대폭발이 ‘탄핵 촛불’이다. 다음 정권은 더 위태롭다. 누가 이기든 상대편에선 인정하지 않을 게 뻔하다. 광화문을 다시 촛불이 점령하느냐, 태극기가 점령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과연 이것이 2016년 ‘촛불 혁명’의 종착지란 말인가.

 혁명은 구체제의 해체다. 그만큼 불안정성이 크다. 그런 사회를 다시 안정시킬 책무가 정치권에 있다. 누구에게 더 책임이 무겁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연 보수다. 보수가 바로 서야 ‘혁명 이후’ 새로운 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보수주의 자체가 프랑스혁명 이후 공포 정치가 기승을 부릴 때 탄생했다. 보수주의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고 했다. 개혁은 보수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개혁하는가. 바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다. 보수가 안보를 중시하는 건 안보 없이는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를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 양극화와 계층 사다리의 붕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꾸고, 부익부 빈익빈 교육 체제를 허물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짜 보수’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과연 반 전 총장에게 보수주의란 무엇이기에 진보란 미사여구 없이는 보수주의자일 수 없는 걸까. ‘가짜 보수’와 결별했다는 바른정당도 다르지 않다. ‘따뜻한 보수’ ‘깨끗한 보수’ ‘개혁적 보수’ 등 온갖 수사 없이는 보수를 내세우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참담한 몰락으로 보수 자체가 사익 추구 집단의 다른 말이 돼버렸으니 ‘양념’이 필요한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를 보수라 말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보수 재탄생을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보수 정권의 실패는 철학적 빈곤함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보수 재탄생은 철학적 재무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보수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양극단을 배제하고 공동체적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보수 자체를 폄하해선 안 된다.

 하지만 ‘나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하지 말라’는 반 전 총장의 선언은 ‘보수=구태’ 이미지만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보수 세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 전 총장에게로 부나방처럼 몰려가고 있다. 이것이 정치 교체라면 참담한 일이다. 만약 반 전 총장이 집권에 실패한다면? 보수는 더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이때 진보 진영의 독주는 누가 제어할 것인가.

 반 전 총장의 ‘진보적 보수주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관건은 ‘보수의 운명’을 짊어진 그가 개혁의 드림팀을 꾸릴 수 있느냐에 달렸다. 반석평의 일화를 소개한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은 “우리나라는 땅이 작아 인재 배출이 중국의 1000분의 1도 안 된다. (반석평처럼) 현명한 사람을 얻기 위해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 훌륭한 법도”라고 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