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흔히 ‘시민대통령’ 콘셉트로 알려진 1952년 아이젠하워 모델에는 세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에게는 ‘국민 대표’라고 할 정도의 엄청난 대중적 인기가 있었다. 둘째, 공화당 내 온건파가 유력한 후보였던 강경파의 로버트 태프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다 아이젠하워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시민대통령’ 기치 아래 국민적인 아이젠하워 추대운동(Draft Eisenhower Movement)이 벌어졌다.
반 전 총장의 상황과 일부 통하는 점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 다자 구도로 바뀐 것과 보수 진영에 유력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점은 2012년 안 전 대표가 맞닥뜨렸던 정치 현실과는 다른, 반 전 총장에게 우호적인 상황이다. 반 전 총장에게 거는 기대 속에는 정치를 바꿔 보자고 하는 열망도 담겨 있다. 유엔 수장 자리를 10년 동안 수행한 반 전 총장 개인에 대한 호감도 있지만 답답한 현실과 정치에 대한 불만이 반 전 총장을 불러들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채워야 할 결정적 덕목이 있다. 아이젠하워의 인기는 정서적 호감을 넘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리더십과 국가 운영에 대한 신뢰가 담긴 지지였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사회적 멘토로 살아온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세인트 찰스’ 이미지에 스스로 갇혀 버렸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일성으로 “통일된 세계 일류 국가를 위해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는 권력의지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치인 반기문은 외교관 반기문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욕을 먹어도 하겠다는 리더의 권력의지가 필요하다. 반 전 총장은 스스로 ‘망가질’ 각오부터 해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