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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길진균]세인트 찰스와 기름장어

입력 | 2017-01-17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2012년 대선 때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에겐 ‘세인트 찰스(Saint Charles)’라는 별명이 있었다. 세인트는 기독교의 성인(聖人)을, 찰스는 ‘(안)철수’를 영어식으로 부른 호칭이다.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안 전 대표의 화법과 행보가 성직자 이미지를 풍긴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까지 과감히 양보했던 그는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어떤 특정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2012년 3월 서울대 강연)이라고 했다. 보수·진보를 포괄하는, 또는 뛰어넘겠다는 ‘새 정치’를 외쳤고 그의 지지율은 한때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안 전 대표가 2012년 한국판 아이젠하워 모델의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그 자리에 서겠다는 전략이다.

 흔히 ‘시민대통령’ 콘셉트로 알려진 1952년 아이젠하워 모델에는 세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에게는 ‘국민 대표’라고 할 정도의 엄청난 대중적 인기가 있었다. 둘째, 공화당 내 온건파가 유력한 후보였던 강경파의 로버트 태프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다 아이젠하워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시민대통령’ 기치 아래 국민적인 아이젠하워 추대운동(Draft Eisenhower Movement)이 벌어졌다.

 반 전 총장의 상황과 일부 통하는 점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 다자 구도로 바뀐 것과 보수 진영에 유력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점은 2012년 안 전 대표가 맞닥뜨렸던 정치 현실과는 다른, 반 전 총장에게 우호적인 상황이다. 반 전 총장에게 거는 기대 속에는 정치를 바꿔 보자고 하는 열망도 담겨 있다. 유엔 수장 자리를 10년 동안 수행한 반 전 총장 개인에 대한 호감도 있지만 답답한 현실과 정치에 대한 불만이 반 전 총장을 불러들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채워야 할 결정적 덕목이 있다. 아이젠하워의 인기는 정서적 호감을 넘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리더십과 국가 운영에 대한 신뢰가 담긴 지지였다.

 반 전 총장은 귀국길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혔다.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온 반 전 총장다운, 어느 진영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정치적 선택은 개인적 호불호를 넘어 피아를 나누게 한다. 정치의 숙명이다. 현실 정치에서 ‘진보적 보수주의자’는 중국집에서 ‘짬뽕 같은 짜장면’을 달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사회적 멘토로 살아온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세인트 찰스’ 이미지에 스스로 갇혀 버렸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일성으로 “통일된 세계 일류 국가를 위해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는 권력의지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치인 반기문은 외교관 반기문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욕을 먹어도 하겠다는 리더의 권력의지가 필요하다. 반 전 총장은 스스로 ‘망가질’ 각오부터 해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